제목 : 하나님을 인정하는 습관
본문 : 사무엘상13:7-14
주제 : 신앙인의 삶은 하나님의 현존을 인식하고 거룩하기 위하여 애쓰고 힘쓰며 하나님의 뜻을 언제나 구하는 삶이다.
흐름 : 내 자녀가 잘 되었다-번영/하나님은 누구시며 어떠한 하나님을 우리가 믿는가/사울의 행위가 불 신앙적이었다면 왜?/내 자녀가 잘 되었다는 것의 의미-하나님을 인정하는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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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녀가 잘 되었다-번영
지금 잠시 아주 부럽기도 하고 훌륭한 이야기들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어느 목사님의 자녀가 자기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여서 LA에 있는 종합병원의 방사선과 전문의가 되었습니다. 어느 목사님의 자녀는 영국에 가서 의료선교를 위한 의과 공부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어떤 목사님의 자녀는 중학생 시기에 미국에 가서 지금은 칼리지에서 치과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대형교회들, 중대형교회들의 목회자의 자녀들이 미국의 감리교회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소득은 월 4000불이 넘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에 우리는 그 자녀가 잘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이야기는 말씀을 마치기 전에 다시 거론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시며 어떠한 하나님을 우리가 믿는가
어제 저녁에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전도를 위한 한국방문을 다큐화한 프로그램을 인터넷을 통해서 시청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그가 많은 기자들 앞에서 기자회견 할 때에 한 말이 아주 공감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이 기독교는 도덕이나 윤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철학도 아니고 과학은 더더구나 아닙니다. 이 기독교는 자기를 세상을 위하여 내어준 한 사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위에 세워진 종교입니다. 하나님 신앙입니다.
믿음은 아주 강직한 것입니다. 단호한 것입니다. 믿음은 내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고 기독교에서 오랫동안 알고 믿어온 그 하나님이 바로 내가 믿는 하나님 이신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도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사람들은 어딘가 초자연적인 존재가 있다고 믿고 하나님이 계실거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신앙과 신앙의 차이점은 바로 그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저와 여러분의 죄를 용서하신 분이신 것을 고백하는가 아닌가에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러한 고백이 있습니까? 나는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바로 이분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아니면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하듯 자신이 만들어낸 풍요의 이방신과 같은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제가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신학을 공부했는지 아시면 조금은 놀라기도 하실 것입니다. 저는 1990년에 서울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학과에 입학한 이후로 계속해서 신학을 공부해 왔습니다. 특히 학교에 다닌 기간만 10년이 넘습니다. 중요한 것은 신앙은 신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건전한 신학을 통하여 신앙이 변질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도 하지만 신학 때문에 온전한 신앙생활에 방해를 받기도 하는 것입니다.
저는 신앙이 윤리가 아닌 것을 부끄럽지만 2006년에 유니온 신학교에 방문하는 동안 깨달았습니다. 저는 그 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의 삶이 윤리적인가 아닌가를 통하여, 그들의 삶이 진보적인가 아닌가를 통하여 그 사람이 신앙적인가 아닌가를 판단하였습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신앙은 윤리, 도덕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얻기 위하여 비윤리적인 행동을 했을 지라도 그가 하나님의 노하신 책망에 마음을 돌이키고 눈물로 침상을 적시며 회개하였을 때 그를 내치지 아니하시고 다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삼아주신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자기 의로 충만하여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을 더욱 노엽게 생각하십니다.
여러분 중에도 혹 이런 분이 안계십니까? ‘나는 흠이 없고, 도덕적이고, 남에게 본이 되는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믿는다.’ 제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언제나 바른 생활의 사람이었기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까지도 나의 자의로 선택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입니다.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우리의 의지로 하나님께 나올 수 없었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감동을 주실 때에 결단할 수 있었던 것뿐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인간적으로 의롭다 해도 우리 속에 가득한 더러운 죄의 성질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자 되심을 믿기만 하면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는 은혜가운데 우리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십니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장 1절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어떤 초월적 존재가 세상을 만들었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창조의 하나님 이신 것을 인정합니다.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겨자씨교회에 오게 되면서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를 더욱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일의 되는 하나하나가 모두다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인도하심이었습니다. 사람의 지혜로는 결코 조직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을 내 삶에서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16:9 창조의 하나님, 섭리의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개인적인 삶에서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삶을 상상 조차도 할 수 없습니다. 내 삶의 이유와 내용과 목표가 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나와 내 가족의 삶에 역사하셨고 현재와 미래에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함 없이 그 어떤 일도 의미가 없으며 감사가 없고 만족함도 없기 때문입니다. 너무 많이 아는 것이 병이라고 저는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해볼 만한 공부들을 두루 해보았습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신학이 너무나 강하게 저를 지배하여 신앙의 사람들을 정죄한 적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시간들도 흘러가게 하셨고 그냥 흘러갈 뿐 아니라 신앙적인 단련이 되게 하셨습니다. 지금은 나의 모든 생각과 자아와 의지를 하나님께 맡겨드렸습니다(잠16:3).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인정하고 살아가십니까? 내가 나의 주인 되지 않고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셨습니까?
지난 주일부터 우리 교회에서는 미스바 40일 특별새벽기도회를 하고 있습니다. 미스바40일 새벽기도회의 주제는 “하나님의 자녀의 모습으로 무릎꿇기”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내 마음대로 조종하려하고 하나님을 단순히 복 주시는 이방신과 같은 존재로 잘못 믿었던 것을 회개하는 운동입니다. 여러분 중에 신앙의 결단과 회복이 필요하신 분들은 새벽에 나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또 새벽기도회를 돕고 큐티할 수 있는 유인물도 한 장씩 드리고 있습니다. 필요한 분들은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모든 물리적인 노력들을 통하여 하나님과 가까워지시는 여러분되시기를 바랍니다.
사울의 행위가 불 신앙적이었다면 왜?
사울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왕으로 추대된 인물입니다. 그 자신은 부끄럼도 있었고 자신감도 부족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선택하신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가 사무엘의 다음과 같은 책망을 듣게 되었습니까?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영히 세우셨을 것이어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13-14절).
이것은 윌리암 바클레이 목사의 지적과 같이 과연 누가 이스라엘을 통치하는가? 의 문제였습니다. 지금 한 번 대답해 보시지요? 누가 이스라엘의 통치자입니까? (성도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사울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불신앙의 요구로 할 수 없이 세우신 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왕 되신 것을 잊어버리고 인간적인 왕을 원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에 노여워하지 아니하시고 사울이라는 훌륭한 왕을 이스라엘 위하여 세우셨습니다. 그럴지라도 이스라엘의 진정한 통치자는 하나님 이신 것을 사울도, 이스라엘 백성도 잊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사울왕이 하나님 앞에서 잘못된 판단과 행동을 하기까지의 상황은 무엇이었습니까? 사울왕이 다스린 지 2년 되는 해에 블레셋과의 전투를 위해서 삼천 명이나 되는 군사를 소집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을 하기 전에는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는 전례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희생 제사를 드리지 않고 전쟁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전쟁이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으로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수행되어야 하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사울왕의 진으로 오기로 한 기한이 지나자 군사들은 동요하였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였습니다. 사울왕은 자기의 군대를 결속시키고 전쟁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전전긍긍했을 것입니다. 더 이상 사무엘을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울왕은 스스로 희생 제사를 드렸습니다.
여러분은 사울왕의 판단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늘 성경은 사무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사울왕에게 얼마나 진노하셨는가를 말씀합니다. 사울왕의 잘못은 세 가지로 지적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사울왕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보다 자기가 소집한 군대를 신뢰하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군사 전략을 신뢰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블레셋을 치려하였습니다. 여러분도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계십니까? 내 판단과 내 경험을 앞세우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추진하고 있는 어떤 일이 지금 되어지지 않으면 안 될 것같아서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도 그것을 밀어붙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생각에는 지금이 호기이고, 적기인데’하면서 하나님 앞에 불신앙을 드러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모든 결정의 근거가 하나님의 뜻과 말씀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사울왕은 자기의 직책을 남용하여 자기에게 허락되지 않은 일을 했던 것입니다. 사울왕은 제사장이 아니었으며 왕에게는 희생 제사를 집전할 권리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세우신 제사장의 일을 경홀히 여긴 것입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과 허락되지 않은 일을 구별하지 못하는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지위가 주어지면 자기들에게 허락되지 않은 재물까지도 얻으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성직자들 가운데서 부를 축적하고 세상에서 영화를 누리려는 것이 바로 자기의 직책을 남용하는 일입니다. 어떤 이들은 부유해지면 그 명성과 지위를 얻으려고 안달을 합니다. 그래서 국회의원직도 돈으로 사려하고, 가짜 학위도 얻으려고 합니다. 그들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을 것을 탐하여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삶에서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자족의 기쁨을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신뢰와 사랑 속에 살아가는 것을 가장 큰 영광으로 여기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사울왕은 불복종의 죄를 범하였습니다. 사울왕이 사무엘에게 불복종하는 것은 그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불복종을 뜻합니다. 사울왕을 책망하는 사무엘이 지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호와만이 이스라엘의 진정한 통치자, 왕이시라는 점입니다. 복종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나의 생각과 판단은 보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고 순종한다고 할 때에 그것은 무조건 적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는 신앙의 사람들이 다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불신앙과 경거망동, 불순종의 죄를 지은 사울왕에게 주어진 말씀은 그가 여호와께서 버리신 왕이 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울왕은 백성을 사랑하고 그들을 인자히 다스리는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의 기름부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도 불완전한 인성을 지닌 사람이었기에 그가 교만해 지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고 판단할 수 있다는 자만에 빠졌을 때에 그릇된 길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항상 하나님의 뜻을 구하시며 그 대답을 들으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 자녀가 잘 되었다는 것의 의미-하나님을 인정하는 습관
오늘 서두에 말씀드렸던 내 자녀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하도록 합니다. 이미 자녀가 장성한 부모님들, 내 자녀가 잘 커주었습니까? 그들이 당당히 사회에 제 몫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부귀영화를 우리 자녀들이 가지게 되는 것은 그들의 분량에 따른 것이니 그것으로 잘되었다 또는 안 되었다 할 수 없는 것이 신앙 안에서의 생각입니다. 그럼 무엇이 중요한가? 우리의 자녀들이 그 삶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는 습관을 가졌는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앞으로 신앙의 부모님께서는 내자녀의 성적표나 어떤 능력, 소유, 성취를 가지고 내 자녀가 잘 되었다 말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불신앙의 사람들이 하는 행동입니다. 대신에 자녀를 자랑하실 때에 그들의 신앙을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자녀가 하나님을 인정하는 습관을 가졌다면, 그래서 성공의 때나 실패의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그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자녀라면, 그 때에 기뻐하시고 그것을 위하여 잔치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급한 일인가를 깨달으셨을 것입니다.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후 기도
살아계신 하나님,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살게 하옵소서. 우리 속에 거룩한 소원을 가지게 하시고 세상의 가치에 물들지 않게 하옵소서. 판단과 행동의 근거가 하나님의 말씀이 되게 하옵소서. 창조주 하나님,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인정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겨자씨감리교회 담임 이승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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