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님의 약속하신 복
본문 : 마태복음 19:16~30
목적 : 성도들이 예수님의 약속하신 복, 영생을 사모한다.
흐름 : 내 신앙 돌아보기/부자청년의 근심/영생을 얻는 방법/예수님의 약속하신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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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신앙 돌아보기
아마도 여러분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내가 항상 편하게 지내던 환경을 떠나서 아주 새로운 어떤 곳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어울려 살아가다 보니 한 순간 드는 생각이 “내가 누구지?” “내가 원래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이었나?” “지금의 나는 내가 아니야!” 하는 것들일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항상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할 때에 사람들은 그 첫인상이나 그들의 선입견을 가지고 나를 판단하기 때문에 속에서 이렇게 외치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I'm not the person who you would think!" 영국, 만체스터에서 그리고 미국, 뉴욕에서 사람들이 나를 피부색으로 나의 여성성으로 나를 판단하는 것을 감지할 때에 나의 세포들이 일제히 외치던 말입니다.
자기를 항상 인식하고 산다는 것은 그 만큼 하루 하루를 책임있게 산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은 자기의 근본을 기억하고 거기서 떠나지 않으며 변질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삶입니다.
시편 137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자기 정체성의 흔들림에서 오는 애환을 그대로 보여주는 시가입니다.
1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2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3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4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5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6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하나님을 예배하던 노래와 수금 타는 것을 바벨론 사람을 위해 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정체성이고 신앙입니다.
교회에도 열심히 출석하고 여전히 성경도 일고 여전히 기도도 하는데 자신이 어떤 신앙인이지 몰라 마음이 괴로웠던 적이 있습니까? 저는 최근에 무언가 내가 믿어오던 기독교 신앙이 외부적인 환경에 의해서 변질된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신앙의 사람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그 신앙이 변질되는 것임을 여러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우리는 오뚝이와 같아야 합니다. 우리의 언어적, 사상적, 사회적, 역사적 한계들 때문에 우리가 항상 신앙의 정도(正道)에 서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잘못 갔다가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렇게 오뚝이 신앙의 중심을 잡아주는 중심교리가 있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자신이면서 인간의 몸으로 오신 우리의 구원자이신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 순간에도 여러분이 이 신앙을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롭게 받은 신앙은 하나님 앞에 철저한 복종과 순종입니다. 얼마나 철저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자기의 목숨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누구를 본받아 신앙생활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사랑을 본받아 우리도 그 사랑을 믿는자와 믿지 않는 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희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서 단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과 그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제자도와 부활의 소망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로 이 단순한 교리를 믿지 않거나 다르게 말한다면 그들은 가만히 들어온 거짓선생들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기독교는 지금 너무나 혼탁해져 있습니다. 아주 분명한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
부자청년의 근심
오늘 본문 16절입니다.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여러분은 이 사람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계명을 지키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그는 두 번째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이 모든 것(계명)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왜 이사람은 자꾸만 자기에게 영생이 확정되지 않았으며 그것을 위하여 무엇인가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그에게는 평안이 없었습니다. 만족이 없었습니다. 삶이 공허하고 무언가 더 얻어야만 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 사람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이며 무엇 때문에 그에게 평안이 없고 영생의 확신이 없는가를 보십시오. 21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예수님을 찾아왔던 부자청년의 경우에 그의 재물이 그에게 근심을 주는 요인이었습니다. 저는 언젠가부터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위하여 기도하는 대신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기에게 있는 것을 족한 줄로 여기고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경제의 성장, 즉 재물을 많이 가지는 것이 우리의 영혼을 잘되게 하거나, 행복하게 하거나, 영생을 얻도록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돈이 많을 때에 범죄 하기 쉽습니다. 장발장처럼, 아주 가난해서 굶주림을 이기지 못해 도둑질을 하는 이들도 세상에 있겠지요, 그러나 가난하다고 다 도둑질을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부자의 경우에는 다릅니다. 부자에게는 가지지 못한 가난한 이들과 나누어야 하는 의무가 기독교 신앙 안에는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라고 말씀하셨는데 고아와 과부는 세상의 가난한 자를 대표합니다.
★ 고아와 과부를 위한 율법 규례 ★
1.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 것. <출애굽기22;21>
2.하나님은 고아나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심을 기억할 것. <신명기10:18>
3.매 삼년 째 십일조를 고아와 과부로 먹게 할 것. <신명기14:29. 26:12>
4.칠칠절의 예물을 고아와 과부와 함께 누릴 것. <신명기16:11>
5.초막절 때 고아와 과부와 함께 즐거워할 것. <신명기16:14>
6.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 것. <신명기24:17>
7.추수 때 남겨진 추수더미를 고아와 과부를 위해 남겨 둘 것. <신명기24:19>
8.남겨진 감람나무 열매를 고아와 과부를 위해 남겨 둘 것. <신명기24:20>
9.남겨진 포도의 열매를 고아와 과부를 위해 놓아 둘 것. <신명기24:21>
10.과부의 웃을 전집하지 말 것. <신명기24:17>
ㅡ 멋쨍이 햇살이 옮긴 글 ㅡ
부자의 경우에는 자기의 가진 것을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나누어 쓰지 못할 때에 그것이 자기에게 올무가 되는 것입니다. 부자에게 가장 혐오스럽고 두려운 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기가 가난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찾아왔던 이 사람도 자기에게 무엇인가 문제가 있는 것을 알았고 그것을 해결하고 싶었으나 자기의 부자 됨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남의 잘못된 행실에서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이 사람에게서 발견하게 되는 우리의 잘못된 모습은 무엇입니까? 내가 누리고 있는 나의 환경에 매여 하나님을 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현실에서 내가 무엇으로 하나님께 순종할 것인가를 깨닫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생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우리 예수님 말씀하신 것처럼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영생을 얻는 방법
이 질문을 한 이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했던 것일까요? 영생을 얻기 위하여 계명을 지키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이 사람은 자기가 계명을 다 지켰으니 그 외에 또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키라고 말씀하신 계명이 무엇입니까?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증언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이 사람이 자기는 계명을 다 지켰다고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의 무지함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십니다. 21절: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여러분 예수님께서 지금 이 순간 저와 여러분 앞에서 이 말씀을 하신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늘 날의 많은 설교자들이 이러한 말씀 앞에서는 비록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이런 말씀을 해 주신다 해도 모든 교인들이 다 근심하며 교회를 떠나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으면 세상적인 복이온다고만 설교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네 마음에 평안과 영생을 원하느냐 네 가진 것을 가난한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
예수님의 약속하신 복
예수님께 찾아온 부자 청년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있던 제자들도 참으로 놀랐습니다. 하나님 나라 들어가기가 그렇게 어렵구나. 베드로의 질문은 오늘 저와 여러분의 귀에 솔깃한 질문입니다. 27절: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자기의 집과 자녀와 부모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입니다. 그들에게 우리 주님이 약속하신 것은 심판의 보좌에 앉을 실 때에 함께 그들이 앉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과연 열 두 제자들의 위치는 천사도 흠모할 만한 위치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믿으려고 애쓰고 힘쓰는 사람들에게도 말씀하셨습니다. 29절: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우리 주님 말씀하시기를, 신앙을 위하여, 예수 이름을 위하여 자기가 포기한 것의 몇 배나 되는 보상을 받게 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기를 포기한 사람들에게 영생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 믿으면 복 받습니다. 그러나 그 복은 복을 구하지 않고 - 복을 구하지 않는 다는 것은 내 주머니 사정을 걱정하거나, 내 자녀가 세상 적으로 성공하기를 위해 염려하거나, 남편과 자신의 사업이 번영할 것을 위하여 근심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 오히려 자기를 내어주고 자기를 포기할 때에 복이 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생명까지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이 세상에게 내어주신 것처럼 우리도 그의 뒤를 따를 때에, 바로 그 때에 비로소 하늘의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드리고 우리는 우리의 본분을 다하는 길이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하신 복을 받는 길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가 예수이름을 위하여 세상에서 가진 여러분의 소유와 환경을 아낌없이 포기할 수 있는 믿음의 소유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 후 기도
정의로우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 땅에서의 삶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기 원하시는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예수 이름을 위하여서, 천국을 세우기 위하여서 우리에게 주어진 어떤 것이라도 포기 할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기독교대한감리회 겨자씨교회 담임 이승주목사
서울시 양천구 신월1동 238-9 2층
T. 02)2693-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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