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12일 일요일

내 집을 세우시는 하나님 081012 겨자씨감리교회 이승주목사

제목: 내 집을 세우시는 하나님
본문: 창30:29-30
목적: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진실한 삶을 살며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을 체험한다.
흐름: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달려가는 곳/ 나는 언제 내 집을 세우리이까/ 세상의 가치 안에 공존하기의 어지러움/내 집을 세우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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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우리를 부르시고 하나님의 자녀의 본분을 다하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렇게 좋은 예배처소를 주시고 우리 겨자씨교회가 물질의 어려움 당하지 않도록 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을 축복합니다.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시는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달려가는 곳
오늘 말씀의 제목은 내 집을 세우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전하고 듣는 동안에 오늘 우리는 우리의 삶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의 가정을 돌아봅니다. 우리들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먼저 집이 있어야 하지요. 그래서 가구도 장만하고 맛있는 것도 사다 두고 먹으며 몸을 쉴 수 있는 집이 필요합니다. 이 집을 마련하기 위하여 우리는 얼마나 큰 노력을 해야 합니까? 어떤 분들은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것을 그대로 이어받기도 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일찍이 자수성가하여 꽤 여유 있는 생활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중 많은 분들이 내 집 마련하는 일로 온 신경을 그것에 쏟으며 애쓰고 있는 것을 봅니다. 집은 참 중요하고 그것을 마련하기 위하여 몇 십 년의 인내도 감당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좋은 집을 가지면 같은 부류의 좋은 이웃을 만나게 되고 자기가 좋아하는 생활을 편안하게 할 수 있게 됩니다.
집에 대한 걱정이 어느 정도 해결된 분들은 자녀들의 문제에 더 많은 신경을 쓰기도 합니다. 30대 이전에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교육을 받았는가 하는 것에 의해 그 사람의 삶의 질이 달라지기 때문에 부모들은 자녀들의 교육과 진로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유명대학이나 특정 인기 학과를 졸업하게 되면 사회적인 입지가 견고하게 되고 그것이 그 사람의 인생가도를 평탄하게 할 것을 알기에 과외를 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과외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 능력으로 스스로 어떤 학문적인 수준에 도달하기 보다는 주입식으로 아니면 과다한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과 같은 모습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대학에서 학생을 받을 때에 그 성적을 보는 이유는 높은 성적을 가진 학생이 학습능력도 높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고액과외를 통하여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고 그것은 결국 대학에서 필요한 학습능력을 갖추지 못한 학생이 그 대학에 입학하게 되는 일을 결과합니다. 어쨌든 일류대학 일류학과를 졸업하는 것을 통해 우리들은 우리의 인생을 보장받고 실제로 그러한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됩니다. 좋은 대학은 좋은 일자리와 선호하는 배우자를 만나는 길이 됩니다.
좋은 직장에 입사한 사람을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워합니까? 어떤 사람들은 휴가 때에 집에서 쉬는 것이 아니라 해외로 나가서 일류호텔에서 여유 자적한 시간을 보내고 옵니다. 다른 사람의 경우에 두 세 달치 생활비가 되는 돈을 이삼일 만에 다 쓰고도 아무런 걱정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좋은 직장에서 많은 봉급을 받기에 그 정도는 커버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왕에 일하고 살 바에야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직장에서도 아랫사람으로 일하기보다, 다른 사람들을 부리는 상관의 자리에 앉기를 희망합니다. 그래서 승진을 위하여 못할 일이 없는 이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자기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옛날 같으면 자기가 왕이 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건강을 해치고 인간관계를 해치고 가정이 파탄 되어도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위하여 끝도 모르고 달려갑니다. 자기의 하는 그 일을 위하여 영혼을 판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자기의 이름을 높이고 자기 성취를 하고자하는 열의가 대단합니다. 그리고는 끝내 그 일을 해내고 처음 마라톤 주자와 같이 쓰러져 죽는 것입니다.
이상에서 조금 과장되기도 하고 조금 축소되기도 하였지만 세상의 사람들이 달려가는 지점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떠십니까? 여러분은 여기 말씀드린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이십니까? 더러 해당이 되십니까? 그럴 때에 이런 질문을 한 번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나의 이런 모든 치열한 삶이 하나님과는 어떤 관계가 있지?” 그리고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나의 영광과 안일만을 구할 때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불신의 사람이 되는 것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일에 생명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언제 내 집을 세우리이까
오늘 본문에서 야곱은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는 신앙의 사람들의 질문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나는 언제 내 집을 세우리이까?” 야곱은 이삭의 아들이고 이삭은 아브라함의 아들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 모든 믿는 자의 아버지입니다. 그의 자손으로서, 그리고 아버지 이삭의 마지막 축복을 받은 후천적, 또는 획득적 장자였습니다. 야곱은 누구보다 복 주시는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자기 형, 에서의 모든 복과 장자권을 빼앗은 그 얍삽함은 그의 신앙을 조금 가리고 있지만 그는 정말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믿는 자였습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맨손으로 도망갈 정도로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얻기 위해 7년을 일한 후에 얻지 못하고 레아를 먼저 얻었고 그 후에 라헬을 아내로 얻었고 그를 위하여 다시 한 번 7년을 일하는 인내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런 야곱이 외삼촌 라반에게 묻습니다.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이 질문은 외삼촌 라반과의 대화 중에 나온 것이지만 오히려 하나님께 향한 질문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이유는 그의 질문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대답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이후의 말씀들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야곱에게 복을 주시는가에 대한 것들입니다.
야곱은 자기 부인들을 얻기 위하여 14년이라는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을 이끌고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라반은 야곱이 돌아가는 것보다 자기와 함께 머물기를 원했습니다. 창세기 30장 27-28절의 말씀입니다: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그대로 있으라 또 이르되 네 품삯을 정하라 내가 그것을 주리라” 라반의 이 말에 대한 야곱의 질문의 뜻은 이렇습니다. “외삼촌, 나를 인하여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으셨지요? 나도 이제는 나를 위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야곱의 이제까지의 상황은 그가 열심히 일하고 하나님께서 그의 손에 복을 주셔서 라반을 부유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야곱도 자기의 집을 세우기를 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주시는 복을 내가 누리자.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나를 풍요하게 하실 것이다. 나는 내가 행복하기를 원한다.” 이러한 야곱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마음속으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지금 네가 가고 있는 길을 가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세상의 가치 안에 공존하기의 어지러움
“18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요한복음 15장
성도의 삶은 세상과 친할 수 없습니다. 재물관이나 인간관계나 그 모든 삶의 영역에서 세상과 대별되는 것이 신앙인의 기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내 돈 가지고 내가 마음대로 쓰는 일이 가능하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내 돈도 내 것이 아닌 것처럼, 즉 하나님의 것을 내가 맡아서 사용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내 몸도 내 것이 아니고, 내 자녀도 내 소유가 아니고, 내가 가진 것이 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는 신앙의 고백이 필요합니다. 만약 성도에게 이러한 청지기 정신이 없을 때에 우리는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혹은 어머니로 믿고 있는가에 대해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승주목사가 세상의 가치에 물들어 혼탁한 정신으로 살고 있을 때에-이러한 비판은 자기 안에서 일어난 것이지 결코 사회적 비판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하나님께서는 아름다운 찬양 한 곡을 통하여 저를 깨뜨리셨습니다.



이 세상의 부요함보다


이 세상의 부요함보다 이세상의 좋은 친구보다

나의 꿈을 이루는 것보다 더 귀한 분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얻고 내가 원한 삶을 사는 것보다

어느 누구의 그 사랑보다

귀한 분 붙드소서 주님 나를 놓치 마소서

내 영혼 비추시고 내게 생명 주신 주님 주의 사랑 너무 커

나의 맘 드려 주께 주님만 영원히 사랑해 나의 사랑 멈추지 않으리

주님만 영원히 사랑해 나의사랑 멈추지 않으리

그 때에 이승주목사는 자기의 꿈을 이루는 것을 세상의 어느 것 보다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인도하옵소서” 하고 기도하기보다 “주님 제가 이러 저러한 인생을 살겠습니다. 이것이 저의 주님을 향한 헌신입니다”하였습니다. 다른 모든 것은 포기하였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옳다고 하는 길을 고집하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라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단순한 한 곡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목사의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고백이 위선적임을 지적하셨습니다. 처절하게 깨닫게 하셨습니다. 이목사의 마음에 가득한 것은 자기 사랑이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누구 앞에서? 장수감리교회의 어린이들 앞에서 2006년 여름에.... 부끄러웠습니다. “오! 하나님, 다시는 그러한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를 오래 믿은 사람도, 은혜를 많이 체험한 사람도, 목사와 장로도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감사하면서도 어리석은 생각에 빠져 미처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깨닫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언제 그렇습니까?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과 말이 잘 통할 때에 그렇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그들과 대화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을 때에 그렇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무서워하지 않을 때에 그렇습니다.
폴 워셔 Paul Washer 목사의 설교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는 자신을 요한 웨슬리 목사님의 경우에 비유하면서 설교자에게 돌이 날아오지 않고 그를 향하여 환호성이 들릴 때에 자기는 오히려 자기가 가짜가 아닐까하여 두렵다고 하였습니다. 요한 웨슬리 목사님은 자기의 설교에 대하여 사람들이 잘 받아들이고 돌을 던지는 자가 없어서 불안해하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자기가 그것을 위하여 기도하는 동안에 자기얼굴에 돌을 던져서 맞을 뻔 하자 그 때에 감사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미워하여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들을 미워하여 그들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수 천 년을 지나오면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런데도 만약 오늘의 시대에 기독교가 세상과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면 그것은 성도들이 세상의 가치에 설득당하고 혼미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합니까? 여러분의 삶의 원동력이 하나님에게서 나옵니까? 아니면 세상과 짝하여 그들을 더욱 기뻐하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우리들의 가치는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 분의 자녀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사는 것이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요구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집을 세우시는 하나님
야곱의 인생이 얼마나 고단했을까요? 그에게는 아직 결론나지 않은 일이 있습니다. 고향에는 언제든 그를 만나면 죽이겠다는 형 에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은 생사를 알 수 없습니다. 친척이기는 하지만 외삼촌 라반은 야곱을 전적으로 후원하는 후원자라기보다 그를 이용하여 부를 누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나마 거기서 얻은 부인들과 자녀들이 그의 위안이었습니다. 아니 그 모든 것에 우선하여 계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그에게 가장 큰 힘이었습니다. 그는 가진 것이 없었으나 자기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자기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였습니다. 그런 그의 입에서 조금은 회의적인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언제 나의 집을 세우리이까?”
대답은 이렇습니다. “야곱의 집은 하나님께서 세우신다.” 바꾸어 말하면 “성도의 집은 하나님께서 세우신다.”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이름을 넣어서 우리가 다 함께 선포합니다. “( )( )의 집은 하나님께서 세우신다.” 이 선포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여러분의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모범으로 보이시면서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할 때에 받을 복에 대하여 오늘 본문 이후의 말씀들을 통하여 보여주셨습니다.
이승주목사는 최근에 목회가 어느 한 측면에서 두 부류의 목회로 분류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삶과 동일하게 목회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목회가 있고 자기가 하는 목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목회하면 항상, 해보니 안 된다, 내 경험으로 봐서 안 된다, 몇 년간 해보았는데 이러한 패턴으로 진행되더라는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안 된다는 것이 그의 믿음이 되어서 교회는 정체되어 있고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기 어려운 목회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승주목사는 확실히 알았습니다. “목회는 내 힘으로는 안됩니다.”
반면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목회는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초대하는 목회입니다. 철저히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낮추고, 자기의 의지를 꺾고 심지어 목회의 방향까지도 하나님께 물어서 목회하는 경우입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어리석어 보이고 더디게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목회입니다. 그 이유는 목회자 자신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이 그 목회 가운데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조지 뮬러 목사님의 기도는 이렇게 하나님의 역사를 초대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인간관계나 자기의 계획으로 고아들을 먹이고 입힌 것이 아니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감동하셔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통하여 그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는 자기의 영광을 구하여 유명하게 되려고 노력한 적이 없지만 수많은 설교자들을 통하여 전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복음이 증거 되는 곳마다 이 여자의 행한 일도 증거 되리라고 하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기의 것을 아끼지 않고 진심으로 그를 섬겼던 여인과 같이 조지 뮬러 목사님의 믿음의 삶도 복음과 함께 전파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조지 뮬러의 집을 세우시고 그의 인생을 이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야곱의 집을 세워주셨습니까? 몇 구절을 읽어봅니다. 야곱이 라헬과 레아, 자기 부인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창세기31장 “5내가 그대들의 아버지의 안색을 본즉 내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러할지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 6그대들도 알거니와 내가 힘을 다하여 그대들의 아버지를 섬겼거늘 7그대들의 아버지가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막으사 나를 해치지 못하게 하셨으며 8그가 이르기를 점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점 있는 것이요 또 얼룩무늬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떼가 낳은 것이 얼룩무늬 있는 것이니 9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외삼촌 라반의 변덕스러움과 탐욕스러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야곱에게 인내를 주셨습니다. 그는 무던히 라반을 섬겼는데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야곱에게 큰 이익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사람을 속이는 사람과 상대할 때에 명심할 말씀입니다.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그들에게 대적하고, 그들과 같이 사악하게 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감당할 때에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야곱과 라반에게 각각 말씀하십니다: 창세기31장, “12...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 13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24...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여기서 하나님은 야곱의 보호자이십니다. 야곱은 상대적으로 약하고 해를 당할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의의 하나님께서 야곱의 안전을 책임지셨습니다. 금방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십니다. 하나님 앞에 구구절절한 설명이나 변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다 아시고 다 보시고 계시기에 오히려 매 순간을 거룩한 두려움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하나님을 여러분의 보호자로 인식하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다른 곳에서 도움이 오지만 그들을 움직이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것을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였는데 그 일이 좋은 결과로 귀결되었을 때에 반드시 그일로 인한 감사를 드리는 것을 잊지 마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야곱과 그 형, 에서의 대화입니다: 창세기 33장 “9...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 “10...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형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 즉 하나님의 얼굴를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11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내 소유도 족하오니 청하건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윈윈 WIN WIN 정책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것은 어느 한 쪽에게만 이익이 되는 정책이 아니라 쌍방이 함께 득을 보는 정책을 말합니다. 이 정책은 국가 간의 합의와 조약에도 적용이 될 것이고, 기업 간에 혹은 개인끼리의 약속에도 적용될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과 에서에게 하나님께서는 윈윈의 복을 주셨습니다. 야곱을 잘되게 하시기 위하여 에서에게도 복을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복주심을 사모합니다. 나만 잘되고 다른 사람의 시기 질투를 한 몸에 받을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하나님의 복 주시는 대상이 되는 것을 소원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야곱은 자기의 종들과 가축 떼와 자기의 가족을 몇 떼로 나눌 정도로 크게 번성하여 하나님의 복을 받은 것을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그런데 그가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하여 실수 했었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했던 형 에서와의 평화가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는 더 이상 그의 달려온 길을 돌아보며 후회하거나 한을 품을 일이 없었습니다. 이 말은 그의 인생의 여정이 완벽한 모범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이끌어 주신 하나님의 손에 그가 강하게 붙들려 있었으므로 더 이상 아쉬울 것도 부러울 것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성공하는 인생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생입니다. 성공이라고 하는 단어가 지시하는 내용도 세상의 사람들의 달려가는 그 목적과는 전혀 다릅니다. 우리 인생의 끝이 세상적인 눈으로 볼 때 비참할 수 도 있습니다. 물질의 빈곤으로, 명예 훼손으로, 사람들의 외면으로 인한 외로움으로, 병들고 지친 모습으로 눈물이 앞을 가리는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의 길을 택한 분들은 의지적으로 가시밭길을 택하였던 것을 우리가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마더 테레사가 그랬고 적십자사의 창시자, 장 앙리 뒤낭과 같은 이들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하겠습니다.
여러분, 신앙은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지식이 아닙니다. 신앙은 삶을 살아내는 어떤 원동력을 붙드는 것인데 그 원동력이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집을 세우십니다. 어느 곳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살고 있든지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생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인생의 여정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여러분의 삶을 이끄시는 것 또한 믿으시고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설교 후 기도
오 하나님, 부족한 우리를 자녀 삼으시고, 옛 조상들의 받았던 복을 누리라고 하시니 감사합니다. 세상 부귀영화가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순례자의 길에 들어선 것을 더욱 기뻐하며 감사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때마다 이겨낼 힘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겨자씨감리교회 담임목사 이승주
158-831 서울시 양천구 신월1동 238-9 2층
전화 02)2693-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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