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나의 예수님
본문: 요한1서 5장 1-12절
목적: 성도들이 예수 안에서 영생의 삶으로 들어간다.
흐름: 사랑/ 순종/ 세상을 이김/ 영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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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많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의 삶의 이것저것을 아시고 돌보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드립니다. 참으로 분주한 한 주간이었습니다. 아침 시간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탓에 오피스 아워에 맞춰서 진행해야 하는 일들을 처리하기가 참으로 바빴습니다. 더구나 모임들이 많았기 때문에 어린이 크리스마스 파티 초대권을 나눠주기 위해 시간을 내는 일이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한 주간 어린이들-주로 신강초교 학생들-을 만나면서 아이들이 저를 이제 신뢰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지난여름에 아이들을 처음 만난 것인데 한 달 정도를 사탕을 나누어 주면서 ‘교회에 열심히 나가라’, ‘예수님을 믿어라’, ‘겨자씨교회에서 하는 공부방에 와라’ 했었습니다. 그 때에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좀 해 보려고 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중단하였습니다.
이번 성탄절에 많은 어린이들을 초대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파티에 올래?’ 하는 질문에 대략 20~30명 정도는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다음 주에 어린이들을 더 만나면서 얼마나 올 수 있을 지 알아내고, 되도록 많은 어린이들이 오도록 할 계획입니다.
크리스마스 선물, 25일 오후 3시에 열리는 파티를 통해서 담임목사가 얻고자 하는 효과는 첫째, 우리 겨자씨교회의 문턱을 낮추는 일입니다. 그래서 많은 어린이들이 우리 교회에 와서 유익한 시간을 보냄으로 교회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입니다. 둘째, 다른 교회에 다니는 어린이들, 불교나 타종교의 어린이들, 불신의 어린이들 모두를 초청하는 이유는 그 중에 예수 믿기로 작정한 영혼이 우리 교회에 정착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 교회는 다른 교회의 어린이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교회를 열심히 출석하도록 격려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행동에 대한 보응을 하실 것을 확신합니다. 셋째, 25일은 겨울 방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날입니다. 어린이들에게 씨앗 도서관을 소개하고 어린이들의 방학생활을 유익하게 이끌어주는 도우미가 되어주고자 함입니다. 이날 오는 어린이들에게 씨앗도서관 운영에 대한 광고를 할 예정입니다.
겨자씨교회의 담임자로서 이승주목사는 우리 교회의 존재 목적이 이웃과 사회에 새힘을 주는 역할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겨자씨의 가진 그 의미, 예수님께서 천국을 겨자씨에 비유하신 그 의미는 결국 겨자씨, 그 작은 한 알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 썩어 싹이 나고 자랄 때에 새들의 안식처가 된 것과 같이 남에게 이로움을 끼치는 존재인 것입니다. 우리 겨자씨교회는 지역주민,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 연로하신 어르신들을 섬기고자 합니다. 이렇게 봉사할 때에 하나님께서 필요한 물질과 동역자를 보내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더 이상 성도의 숫자를 가지고 염려하지 않고 교회 살림을 해나가는 것을 염려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이루는 것이 우리 겨자씨교회의 사명입니다.
오늘 말씀은 나의 예수님이라는 제목의 말씀입니다.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해서 교회를 떠나갑니다. 더더욱 신학생들은 자신의 짧은 신학적 사고로 설명되지 않는다고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를 부인하고 기독교를 떠나가는 일들이 빈번합니다. 지난 월요일에 어린이들에게 크리스마스 파티 초대권을 주고 있는데 한 사오십 대의 여자 분이 대뜸 화를 내면서 ‘성탄절은 로마의 태양신을 섬기던 날이었다. 거짓말하지 말라.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하였습니다. 그 분이 알고 있는 것은 너무나 단편적인 사실입니다. 인터넷이나 메스컴을 통하여 알게된 단편적인 지식을 가지고 기독교를 비판하는 일이 비일 비재합니다. 이러한 것에 대응하는 기독교의 지혜로운 움직임 또한 요청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예수님을 ‘나의 예수님, 나의 구원자’라고 고백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여러분에게 기독교를 모해하면서 ‘부끄러운 줄 알라, 당신들은 거짓말쟁이다’라고 할 때에 진정으로 여러분의 속에서 흔들림이 없는가 하는 것을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사단은 교묘합니다. 여러분의 약점을 노리고 그것을 통하여 여러분의 신앙을 흔들어 놓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은 무엇에 대한 것이며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가에 대해 듣고 확신에 찬 신앙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사랑
“1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2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를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
기독교 신앙은 거듭남에 이르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거듭남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거듭난 후에는 우리의 아버지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아버지, 사랑합니다”라는 고백을 많이 올려드려야 하는 데 그것은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한 자녀된 자의 본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는 예수님과 같아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누구나 예수님의 형제요 자매요 그 어머니가 되는 것입니다(막3:35). 예수 안에서 거듭난 우리가 아버지 되신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마땅히 주 안에서 형제와 자매된 사람들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예수 안에서 형제 자매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그 사랑은 동일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 형제와 자매를 사랑하고, 형제와 자매를 사랑하는 그 사랑의 행위를 통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증거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삶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교회에서 아니면 연합으로 모이는 자리에서 만나는 이들을 사랑으로 섬겼습니까? 아니면 하나님 앞에서 복을 받는 일에 있어서 경쟁자로 느끼고 미워하였습니까? 예수 안에서 형제 자매된 이들, 교우들을 하나님과 같이 예수님과 같이 생각하고 섬기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자세가 확립될 때에 세상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베풀 수 있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순종
“3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것운 것이 아니로다 ”
순종이 사랑의 증거가 됩니다. 우리들이 사랑을 남에게 나타내고자 함에는 아무래도 그를 기쁘게 하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하겠습니다. 성도의 사랑은 오직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으로만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한때 저는 이러한 순종이 저 자신의 외로운 투쟁이나, 외로운 고행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예수 믿는 것이 꼭 자기를 학대하는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었습니다. 그러나 이승주목사가 믿음이 좋다고 하는 것은 그러한 조건이라 할지라도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기 믿었기 때문에 어린이들에게 설교할 때에도 아주 고통스러운 일도 감당하라고 설교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런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어른도 아니고 어린이들까지 이렇게 어려운 가시밭길을 가야 하는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순종이 자학의 길이 아니라 생명의 길인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순종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의 삶은 형통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은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어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사시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그 삶을 뒤 따르는 것이 무거운 짐이 아니라고 오늘 3절은 말씀합니다. 그 이유는 대략 세 가지 정도입니다. 먼저 하나님은 사람에게 그 말씀을 지킬 만한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시고 우리 마음 가운데 함께 하셔서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게 하십니다. 둘째,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응답은 반드시 사랑의 응답이어야 하는데 사랑이 있으면 어떤 의무이든지 어떤 일이든지 어렵거나 힘겨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 젊은이가 아이를 업고 매일 그 아이를 등교를 시킵니다. 누가 물었습니다. 등에 업은 아이가 무겁지 않느냐고. 그러나 그 젊은이는 말했습니다. “무겁다니요, 이 아이는 제 동생인걸요.”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하는 일은 결코 힘들거나 짜증스럽지 않습니다.
여러분, 요즘 들어 괜히 교회에서 하는 일이 짜증이 나고 힘이 들었던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과 신앙의 자세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왜 주의 일 하는 것을 기피하고 그 일을 통해서 기쁨을 얻지 못하는 것일까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여러분의 최선을 다하시는 신앙생활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을 이김
“4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5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여러분, 세상을 이기는, 세상을 정복하는 믿음이 여러분에게 있습니까? 이러한 믿음이란 어떤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믿음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란 성육신에 대한 믿음입니다. 성육신을 믿는 다고 함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이 세상에 들어오시고 친히 인간의 몸을 입으셨다는 것을 믿는 일입니다. 성육신에 대한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배려해 주신다고하는 확신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을 때에 믿음의 능력을 지닌 사람이 됩니다. 첫째, 믿음의 사람들은 이 세상의 악영향에 저항할 수 있는 방어력을 지니게 됩니다.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우리를 위하여 친히 고통당하신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사단의 권세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악과 대결하여 그것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의 공격을 견디어내는 힘을 지닙니다. 성육신을 믿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삶을 본 받아 살고자 결단하는 이들을 도우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유 없이 여러분을 미워하고 헐뜯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또는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우연히 그 앞을 지나다가 사고를 당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무고한 해를 당하는 일들이 우리의 삶에는 빈번합니다. 이런 일들을 참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더 어려운 고난은 예수 믿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입니다. 한 사람이 예수 믿는 신앙을 가졌다는 것은 그가 자기의 삶을 바로 살기 위함이며 어찌되었든 다른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끼치기 위한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기 때문에 사람들이 여러분을 미워하고 시기합니다. 괴롭힙니다. 욕하고 심하게는 때리기도 합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목숨을 빼앗기도 합니다.
이전의 순교자들, 신앙의 선조들이 보여준 모습은 예수 안에서 도우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닥쳐오는 모든 고난을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이러한 고난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 놀라거나 당황하지 마시고 담대하게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여러분 자신의 의지와 힘으로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뜻으로 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믿음, 성육신을 믿는 믿음은 최후의 승리를 믿는 소망을 가지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생애와 죽음, 그리고 부활을 믿으면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승리자이신 예수님과 영원히 함께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생
“11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기독교인의 생활의 본질은 영생입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영원을 소유하고 그 안에 거하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영생은 하나님 자신의 생명을 말합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바로 그 하나님의 영생의 삶에 초대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원의 삶에 참여한 사람들입니다.
영생에 들어간 사람들은 몇 가지 특징적인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화평을 힘입어 평온한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좌절을 극복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신성함을 힘입어 죄를 극복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어 고뇌와 적의를 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힘입어 죽음을 극복하는 삶을 삽니다. 하나님의 불멸하는 생명을 힘입어 불멸의 삶을 살게 됩니다.
지난 월요일에 감리교신학대학 동문 노래패, 암하렛츠의 모임에 가서 영생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길게 이야기 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거두절미하고 저는 요즘 영생에 들어갔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이전에 느끼지 못하고 알지 못하던 하나님과 사귐과 그 안에서 누리는 평안이 영생의 문을 열어놓았습니다.
영생의 상태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집을 위하여, 옷을 위하여, 끼니를 위하여 염려하고 걱정하지 않습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응당 감당해야 하는 개인적인 책임과 역할들은 열심히 감당하지만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지 않는 독립적 삶을 살기위하여 애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땀과 노력이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는 일이며, 이웃과 사회에 새 힘을 주는 일이라고 믿고 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영생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영생은 우리들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에게 나아갈 때에 얻게 되는데 이 두 가지 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만이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완전히 알고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만이 하나님의 모습을 우리들에게 완전하게 계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8). 여러분,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만이 우리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실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설교후기도
구원자 하나님,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생에 이르도록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주눅들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이기는 믿음을 갖게 하옵소서. 모든 적의와 미움은 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믿는 자들과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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