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28일 목요일

예수 좋은 내 친구 내 곁에 계시네 겨자씨감리교회 이승주목사 080824

제목 : 예수 좋은 내 친구 내 곁에 계시네
본문 : 요한복음 15:1-27
주제 : 우리의 가장 좋은 친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우리는 그 친구의 뒤를 따라야 한다.
흐름 : 시트콤 프렌즈/친구가 필요할 때/친구가 되어줄 때/예수 좋은 내 친구 내 곁에 계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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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콤 프렌즈
영어 회화에 도움이 되기도 하고 연령대도 맞기도 하고 정서에 맞기도 해서 제가 아주 즐겨보던 미국 시트콤이 있습니다. 이미 종영 된지 몇 년이 지났지요. 프렌즈, 친구들이 아파트에 함께 모여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취미도 다르고 캐릭터도 다르지만 친구입니다. 왜냐하면 함께 울고 웃은 시간들이 계속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베스트 프랜드라고 할 만한 그런 관계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로의 성격을 알아서 부딪히지 않도록 배려합니다. 누가 무엇을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알아서 서로의 기분을 맞춰줍니다. 희노애락이 끊임없이 반복되지만 행복해 보입니다. 그 시트콤을 보면서 학창시절의 친구들을 그리워해본 분들이 많았을 겁니다. 저는 그 시트콤을 볼 때에 두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하나는 내가 친구들을 위한 노력을 정말 안했다는 것이었고(이제 앞으로는 친구들을 위해 노력할 생각입니다. 정말^^입니다. 예전엔 친구들과 밥 먹는 시간도 아까와 했는데...반성하겠습니다. 자주 만나고 연락도 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하나는 친구라는 테두리에 갇혀서 자기들이 어떠한 가치를 실현하고 살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잊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가치는 뉴욕커의 가치로 가득한데 그것은 사회의 중산층에 속하는 이들이 자기들 이외의 계층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어울려 사는 것에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구의 어느 한 지역에서는 엄청난 재난으로 인해 사람들이 죽고 고통당한다 한들 그들은 관심이 없습니다. 내 눈 앞에 있는 친구들과 희희낙락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들의 행복입니다. 그들을 보면서 부럽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저렇게 자기들만의 세계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친구가 필요할 때
그러나 그런 생각들 이전에 우리에게 친구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언제입니까? 영화를 볼 때, 맛있는 음식점에서 식사할 때, 아름다운 경치가 있는 곳이나 멋진 공연을보러 갈 때에 우리는 친구가 필요합니다. 함께 그것을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합니다.
마음이 외로울 때에 친구가 필요합니다. 마음이 외롭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분석되는데 먼저 마음이 외로운 것은 물리적으로 그 사람 주위에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얼굴을 보고 함께 울고 웃는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지요.
또 마음이 외로운 것은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들어야 하는 말을 해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기를 지지해 주는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친구가 있으면 마음이 든든하고 어려움이 닥쳐와도 두렵지 않습니다. 기쁠 때에 함께하고 어려울 때에 도와주는 친구가 있다면 그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자기가 누구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관심을 가져주는 친구가 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할 순 없을 것입니다.

친구가 되어 줄 때
그러나 친구는 갖는 것이 아니라 되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듯이 이승주목사는 미혼입니다. 요즘에는 일부러 결혼 안했다는 이들이 비혼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저는 아직 안했기 때문에 미혼이라는 말을 씁니다. 아무튼, 미혼의 노처녀에게 더 외로움이 있습니다. 저의 연령이 되면 모두 시간 보내는 것이 가족단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가족 중심으로 시간을 보내는 날에는 정말 외로워합니다. 그런데 그런 시간들을 보내면서 깨달은 것은 친구는 가지는 것이 아니라 되어주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들은 사실 자기들이 스스로를 사람들에게서 격리시키기 때문이지요. 외로움은 게으름입니다. 외로움은 다른 사람들에게로 다가서지 않는 게으름입니다. 외로움은 자기의 생각만을 고집하는 게으름입니다.
친구가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친구의 범위를 넓히시기 바랍니다. 나와 같은 생활수준에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생활방식이 비슷한 이들만이 나의 친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나와 아주 다르고 나와 비교도 되지 않는 비참한 생활을 하는 이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우리의 친구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들려주신 적이 있습니다. 부자의 집 문 앞에 거지 나사로가 더러운 병에 걸려 신음하면서 겨우 구걸하여 먹고 살다가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부자는 그 후에 지옥으로 갔구요. 친구라는 주제에 대해 생각 할 때 부자는 절대로 한 번도 나사로를 자기의 친구가 될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사로는 비록 병들고 먹을 것을 구걸하는 노숙자였지만 죽은 후에 천국에 가게 될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녀였던 것입니다. 부자가 혹 나사로의 친구가 되어 그의 신실한 신앙을 듣거나 경험하였다면, 그의 진실한 신앙을 배울 수 있었다면...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합니다. 여기서 말씀드리려는 것은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보물이 간직되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인데 우리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특별하다고 생각하여 사람들에게서 분리시키지 말고 보통사람들과 그리고 보통 보다 못한 사람들과도 친구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 좋은 내 친구 내 곁에 계시네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의 엄청난 명령이 발견됩니다. “서로 사랑하라. 사랑은 어떻게 하는 것이냐 하면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까지를 사랑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예수님의 명령한 사랑을 행하면 예수님의 친구가 된다.”
12절에서 1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12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으실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직접 인간의 죄 된 몸을 입으셨습니다. 우리와 화해하시고 우리와 사귀시려고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입장을 생각할 때에 우리가 우리의 눈높이를 낮춘다고 할 때에 가장 낮은 곳까지 낮추도록 하는 것입니다. 세계의 가장 밑바닥까지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시고 그들과 친구가 되어주시는 여러분이 다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오셔서 좋은 음식, 좋은 거처를 탐하지 않으셨습니다. 높은 지위를 원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몰려와 예수님을 세상의 임금으로 삼으려 할 때에도 그들을 오히려 꾸짖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직 원하셨던 것은 죄인과 창기의 친구가 되어주시며 모든 병든 자들의 의원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들 앞에서 현학적인 설교를 하시기보다 쉬운 예화를 들어가며 깨닫지 못하는 군중들에게 반복해서 설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 삶으로 배우도록 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드려 산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 있게 사랑 중 최고는 친구를 위하여 제 목숨을 버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승주목사가 충격을 받고 회개하도록 만든 찬양이 있습니다. 2006년 여름에 힐송 찬양 “이세상의 부요함보다”를 부르다가 또 한 번의 회심이 서서히 시작되었습니다.
그 찬양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이세상의 부요함보다
이세상의 좋은 친구보다
나의 꿈을 이루는 것보다
더 귀한 분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얻고
내가 원한 삶을 사는 것보다
어느 누구의 그 사랑보다
귀한 분
붙드소서 주님 나를 놓치 마소서
내 영혼 비추시고 내게 생명 주신 주님
주의 사랑 너무 커 나의 맘 드려 주께
주님만 영원히 사랑해 내 사랑 멈추지 않으리
이 찬양을 장수교회의 어린이들과 함께 부르면서 제 마음 속에서는 가책이 느껴졌습니다. 내가 이 찬양을 부르지만 나의 마음이 정말 이 찬양과 같지 않다는 생각에 위선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위하여 십자가 고통을 당하시고 나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셨는데, 이제 목사가 되어서 주님 앞에서 진정한 친구의 고백이 담긴 찬양을 드릴 때에 ‘아차, 나는 그렇게 살고 있지 않구나’ 라고 깨닫게 되었을 때...그 찬양이 끝나기도 전에 저의 얼굴은 불게 달아올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 시작된 변화가, 회심이 지금 진행 중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가장 먼저 우리의 친구로 기억해야 할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어떤 친구보다도 진실하며 우리를 위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의 친구가 되기 위해 오늘 말씀대로 예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랑의 대상은 가장 좁게는 나의 절친한 친구, 가족들일것입니다. 그러나 그 좁은 범위를 벗어나서 내가 일부러 찾아내지 않으면 만날 수도 없는 세상의 불행한 이들이 우리의 친구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곁에 베데스다 연못가에 있는 38년 된 병자를 찾아가셨습니다. 그는 병이 오랜 만큼 희망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베데스다 못가에는 수많은 병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일부러 찾아가시지 않는 한 무시하기 쉬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친구로 여기시고 찾아가셔서 그의 형편을 물으시고 병을 낫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가장 낮은 자리까지도 내려가셔서 그들을 친구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하신 명령 “서로 사랑하라”는 이 말씀을 지켜 행하기 위하여 낮 모르는 사람들에게 친밀한 친구가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설교후기도
우리에게 친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닮아가게 성령께서 도우시옵소서. 다른 이들을 판단하고 정죄하기보다 그들을 이해하고 섬기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기독교대한감리회 겨자씨교회
서울시 양천구 신월1동 238-9 2층 02) 2693-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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