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21일 일요일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라 080914 겨자씨감리교회 이승주목사

제목 :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라
본문 : 아모스 5장 1~27절
목적 :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그에 합당한 삶을 산다.
흐름 : 추석명절/안재환과 그의 삶과 죽음/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경고/책망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추석명절
해피 추석! 일가친척이 한 자리에 모이고, 지인들에게는 추석인사로 선물을 보내는 일들이 즐거우셨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모든 일이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와 행해질 때에 그 일로 인해 우리 자신이 먼저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지인들에게 선물을 보내거나 편지를 드리는 일만해도 그렇습니다. 그들에 대한 진정한 애정이나 존경심 없이 그저 추석이니 인사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의무감으로 그 선물을 드렸다면 받는 그들도 그리 반갑지 않을 것입니다.
추석에 가족들을 찾아가 만나고 함께 음식을 나누는 일도 진심에서 해야 합니다. 추석이니 할 수 없이 찾아가고, 할 수 없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얼마나 서로에게 소모적인 일입니까? 진심으로 내 가족의 존재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일 년 농사-농사를 안 짓는 사람이라도-가 잘 되어 이렇게 풍성한 추석 명절을 맞게 된 것을 함께 축하하는 절기가 되어야 합니다.
한가위의 뜻이 무엇입니까? 우리 조상들이 이전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을 때에 거둬들인 과일과 진미를 차려 그 조상들에게 감사하던 날이 아닙니까? 그러나 이제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이 자기들의 조상들의 은덕을 기리는 정신은 우리가 이어 받아야 합니다. 자기의 뿌리를 기억하고 자기 부모와 조상의 은혜에 감사하는 효의 마음은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의 말씀입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보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3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에베소서6:1-3.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에 효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늘의 하나님 아버지를 잘 섬길 수 있는 마음이 눈에 보이는 육신의 부모님에게 잘하는 것에서부터 나옵니다. 부모님이 누구입니까?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시고, 가족을 이루고 그 가족이 살아갈 수 있도록 어려움도 헤쳐 나온 우리의 은인이 아닙니까? 명절이 여러분에게는 이러한 하나님 사랑과 가족 사랑의 축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웃과 친지들에게도 감사하는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거기에 더하여 나에게 주신 것으로 가난 한 이들과 힘없는 이들을 위하여 나눌 수 있는 아름다운 시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안재환의 죽음과 그 의미
지난 한 주간은 고 안 재환 씨의 죽음으로 인해 서글픈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의 장례식이 끝난 지금에도 그의 사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 주변의 사람들을 더 안타깝게 합니다. 물론 가스에 의한 질식사라고 하는 물리적인 사인은 나왔지만 그의 아버지가 제기하듯이 그가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이 아닐 것이라는 추측이 우리의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합니다. 그의 유서는 그의 친필인 것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혹 그것이 그가 직접 쓴 것이라도 유서의 내용이 너무나 엉성하고 고등교육을 받은 그의 양식을 생각할 때에 그의 생각으로 쓴 것이 아니라는 문제제기입니다.
그의 아버지가 문제 삼는 것은 협박과 공갈이 있었기에 혹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더라도 그것은 그의 의지로 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의 목숨을 위협하고 그의 처 정선희 씨를 위협하는 일들이 자주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자기의 가족을 보호하기 위하여 극단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고인을 추모하고 그의 가족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안재환의 삶은 어떤 삶이었습니까? 그는 부모에게는 효자였고 자기 부인에게는 사랑 많은 남편이었습니다. 자기의 부채를 안겨주기 싫어서 혼인신고도 하지 않고 살 정도의 배려를 했던 사람입니다. 그의 가정적인 삶은 모범적이고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사회생활은 어떠했습니까? 서울대학을 졸업하고 탤런트가 되고 사업을 크게 했던 사람입니다. 사회의 부러움을 살 만한 이력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는 야심을 품고 영화사업과 화장품 사업, 그 외에도 여러 분야로 사업을 벌였습니다. 성공이 눈앞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금 문제가 그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계획했던 일들이 순조롭지 않자 자금 문제는 그의 생명을 위협하기 까지 하였습니다.
그의 문제는 무엇이었습니까? 저는 고 안 재환 씨의 죽음을 보면서 이 땅에서 사업하시는 분들의 삶이 이렇게 고단하고 위태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에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 나라의 경제를 살리고 이 백성의 삶을 이끌어가는 모든 사업하시는 분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여기서 그의 생명을 위협한 자금문제라는 말에 여러분 어떤 생각을 하게 됩니까? 돈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가치 있는 것입니까? 왜 그가 돈 때문에 목숨을 잃어야 했습니까? 여러분 선한 사람이 악한 자와 선한 일을 위하여 손을 잡을 수 있습니까? 악은 멀리해야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롬16:19 하였고 우리 주님은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10:16 말씀하셨습니다.
고 안재환 씨가 40억 정도의 사채에 시달렸을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인데, 그가 상대한 이들이 누구인가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의 사업이 잘 되었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그의 사업이 어려움을 겪게 되니 그의 목숨을 위협 당하게 까지 되었습니다. 고인이 상대하였던 이들은 그의 생명을 위협할 만큼 악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가 그것을 사전에 알지 못했을까요? 그들은 충분히 그런 일을 할 사람들인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사업이 망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무모한 투자를 하게 된 것입니다.
시편은 말씀합니다. “1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 1:1. 우리가 착각하는 것은 악인들이라도 양심은 있을 것이고 악인들이라도 인정은 있을 것이다라고 하는 생각입니다. 악인들은 하나님이 안계시다 하고 악인들은 자기들의 권력과 재물로 무엇이든 사고 팔수 있으며 자기들의 마음대로 하지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여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행위를 일삼는 이들입니다. 그들과 짝하여 선한 일을 할 수 없는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인의 실패는 자기의 지성과 능력을 펼치기 위하여 함께 관계하지 말아야 할 사람들과 상종하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간곡히 당부합니다. ‘사업은 다르다’고 말하면서 악덕 사채업자를 의지하고 그들과 관계하지 마시고 오직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업가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것은 길이 아닌 곳으로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른 이들은 선과 악으로 분류하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를 일들을 행하는 무리에 속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시편 15편과 같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2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3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4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5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경고
아모스 선지자는 원래 목축업을 하고 혼합농경을 하는, 오늘 날로 말하면 대 농장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직업 선지자가 아니라 무역을 위하여 이스라엘에 오가던 이였습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이스라엘과 유다와 주변 국가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의 잘못을 지적하는 내용입니다.
아모스의 시대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최고의 절정기였던 여로보암 2세의 통치(B.C.) 기간 말년이었습니다. 당시 아스라엘은 옛솔로몬의 영토(왕하14:25)를 회복하였습니다. 왕실의 사람들과 귀족들은 정복지에게 받은 조공으로 엄청난 부자로 살았습니다. 그들은 탐욕과 사치에 빠져들었습니다. 반면 농민들의 생활은 말할 수 없이 비참한 삶이었습니다.
번영의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신음하는 백성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나라를 다스리지 못하고 탐욕스러운 지배자들의 자기만족만이 팽배했습니다. 그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4절)”입니다. 모두가 살만하다고 할 때가 이스라엘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때였습니다. 그들은 7절, ‘정의를 쓴 쑥으로 바꾸며 공의를 땅에 던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에게 나온 공의와 정의를 받들어 통치의 이념으로 삼지 않고 자기들의 좋은 대로 행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심판이 어디 있느냐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명박 대통령과 그를 돕는 정부의 각료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도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로 그가 나라를 통치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촛불집회를 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정부를 찬양하는 것이 옳은지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어느 쪽에 속하였더라도 여러분은 나라를 위하여 그것을 한다고 할 때에, 꼭 대통령과 위정자들에게 정의와 공의 기준이 서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전달한 하나님의 경고는 8절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을 아침으로 바꾸시고 낮을 어두운 밤으로 바꾸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이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입니다. 그런 그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자기들의 좋은 대로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행한 악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 즉 주의 말씀을 선포하는 자를 미워하였습니다. 정직한 말을 하여 양심에 가책을 일으키는 이들을 싫어하였습니다. 힘없는 자들을 착취하였습니다. 그 결과 부귀영화를 누리는 이들이 자기들을 위하여 지은 호화저택에 살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11절입니다. “너희가 힘없는 자를 밟고 그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거두었은즉 너희가 비록 다음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주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이들이었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이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합니다. 21-22절: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백성들을 압제한 이들이 그 더러운 마음과 더러운 손으로 드리는 예배를 받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정의과 공의입니다. 24절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예배드리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순종함 없이 하는 모든 종교적인 행위들이 무의미 합니다. 설교자 폴 워셔Paul Washer의 지적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삶의 악세서리아니라 우리의 삶 그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신학자 칼 바르트는 1962년 봄학기 고별연설에서 아모스의 말씀을 신학과 신학자들에게 적용시켜서 우리가 옳다고 행하는 모든 일들을 돌아보게 하였습니다. 바클레이 주석에 인용된 것을 소개합니다. “나는 미워한다. 나는 여러분들의 강의나 세미나들이나, 여러분들의 설교들, 강연들, 성서연구 등을 경멸한다. 그리고 나는 여러분들의 토론이나 모임들이나 회합들을 기뻐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흐르지 않는 사상과 토론과 예배는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라
아모스 선지자의 이스라엘을 향한 책망은 오늘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능력과 업적에 자화자찬하며 축제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크레이지의 표현처럼 무도회장에서 즐겁게 춤을 추었고 삶의 기쁨으로 충만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모스선지자에게 그들의 모습은 마치 빙산을 향하여 돌진하고 있는 타이탄호와도 같았습니다. 그들은 이미 죽은 목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경고가 그들 앞에 떨어졌고 그 일은 반드시 이룰 것을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 하나님의 공의가, 하나님의 정의가 실현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렇기 하기 위하여 우리 믿는 자가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금융활동을 정당하게 해야 합니다. 예수 믿으면서 돈놀이 하고 계십니까? 즉시 중단하시기 바랍니다. 꾸어줄 때에는 받지 않을 생각으로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더욱 적극적인 반응으로는 기독교인들은 은행들도 감시해야 합니다. 은행들이 빛을 진 사람들에게 가혹한 행위를 하지 않는가 아니면 농민들이나 소자본 사업가들에게 불리한 상품을 판매하고 있지 않은지 소비자 단체를 통하여 그들을 감시해야 합니다.
정당한 소비활동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물건이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고 만들어진 물건과 산물인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과일을 살 때도 고르지 말고 담아주는 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소비자들이 올바른 소비의 습관을 가질 때에 상인들도 윤리에 따라 장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지위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을 억울하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높은 자리에 있을 때에 그렇지 못한 이들을 더욱 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가진 것으로 다른 이를 서럽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사람들이 교회에서 함께 먹는 것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할 때에 그들을 책망하였습니다. 내가 나누어 줄 것이 있는 분들은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조금 더 신경 써서 다른 이들에게 베풀 때에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행위들이 우리의 의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과 공평하심에 순종하는 믿음의 행위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나를 믿고 무언가를 행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담대히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오직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 후 기도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정의로우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있는 자는 나누게 하시고 높은 자는 자기를 낮추어 세상의 힘없는 이들과 가난한 이들을 돕게 하옵소서. 연약한 자를 압제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를 듣지 말게 하시고 오직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 받아 살게 하옵소서. 세상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는 우리 믿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겨자씨감리교회 이승주목사
153-831 서울시 양천구 신월1동 238-9 2층
전화 02)2693-0525

댓글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