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28일 일요일

예수를 경험하라 080928 겨자씨감리교회 이승주목사

제목: 예수를 경험하라
본문: 막5:21-34
목적: 성도들이 하나님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신뢰하고 경험한다.
흐름: 마음을 어지럽히는 삶의 문제들/병들고 가난한 여인 이야기/믿은 것을 행동에 옮기다/예수를 경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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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어지럽히는 삶의 문제들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 항상 저는 한 주일 동안에 제가 가장 많이 생각하고 가장 많이 에너지를 쏟은 일이 어떤 것이었는가를 돌아봅니다. 오늘 생각해 보니 요 한 주간은 어린이들 전도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이들이 학교 끝나고 집에 오는 시간에 준비해둔 전도용품을 가지고 나가서 나누어주고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또 시장가는 시간에도 전도용품을 들고 어린이들과 학부모들을 만나기에 열심을 내었습니다. 우리 동네에 사는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우리 겨자씨교회의 공간에 들어오게 할까.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나의 관심과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할까를 위해 정말로 고심하고 또 실망도 하였습니다. 사람이 자기 노력을 많이 들인 일에는 실망도 크게 하는 법인데, 이번 주가 그랬습니다. 아이들과 약속한 시간에는 어디 가지도 못하고 다른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대기조’ 라는 말이 있지요? 제가 바로 그 대기조였습니다.
그렇다 해도 아주 수확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몇몇 아이들이 얼굴을 알아보고 반가워했고, 저는 어떤 아이들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선영이, 진주, 진혁이, 서영이 ... 그리고 지난 주일에 늦잠자서 교회에 못 왔다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이웃에 사는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우리교회가 계획하고 있는 어린이 방과 후 센터와 씨앗도서관, 어린이&청소년 비전클럽이 이 지역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도울 수 있는 최선의 길이 될 것을 다시 한 번 확신하게 하였습니다.
아직도 전도와 지역봉사로 겨자씨 교회의 직무를 담당하는 일이 저에게는 부담스럽고 결과도 없지만 하나님께 맡기기로 했습니다. 이제 두 달 지났는데, 앞으로 조금씩 사람들을 알아가고 어린이들을 알아가고, 그래서 이 근처의 주민들이 저를 겨자씨교회의 목사인 것을 알게 될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여러분이 알게 된 이승주목사의 근심이나 걱정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 겨자씨교회가 마치 이 지역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invisible(안보이게)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세상에 빛과 소금으로 빛나며 그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데 사람들에게 아예 존재하지 않는 교회가 된다면 그것만큼 이승주목사를 걱정시키는 일이 없는 것입니다. 실제로 저는 아주 많이 근심했고, 진취적인 마음이 아주 많이 후퇴하였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자녀를 둔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가 탈선하지 않고 바른 사람으로, 사회에서 자기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사람으로, 그래서 사회의 리더가 되는 것을 위해 노심초사할 것입니다. 아이 교육을 위해 교육열이 센 특정 지역으로 이사 가는 것도 요즘엔 그리 특이한 일도 아니지요. 미국에 가서 공부하는 자녀를 둔 부모를 만나는 일도 참으로 흔해졌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의 자녀들이 사회에서 낙오자가 아니라 리더가 되어 중산층 이상의 삶을 살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노후연금보험, 암보험, 평생의료를 책임지는 손해보험에, 가족사랑생명보험에 가입하셨습니까? 여러분 중에서 유복한 분들은 이 모든 보험에 가입이 되셨겠지요. 그러나 어떤 분들은 일부만 가입하고 어떤 분들은 보험에 가입할 형편이 되지 않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험한 병에 걸리면 어쩌나, 사고로 심한 장애를 입으면 어쩌나, 내가 없이 내 가족들이 어떻게 살까? 나이 들어 자식들 신세 지지 말아야 하는데... 하는 등의 염려들이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힙니다.
함께 사는 가족 간의 사소한 문제들 또한 우리를 지치게 하고 슬프게 합니다. 아주 작은 말 하나가 마음에 상처를 주고, 서로 존중하지 않는 부부가 함께 살 때 상대방의 인생을 천한 것으로 격하시킵니다. 함께 한 공간에 있는 것조차 그들에게는 고통이 되는 가족들이 있습니다.
직장이 변변치 않아 날마다 자신의 무능을 확인받아야 하는 분들도 혹 계실 것입니다. 이상하게 하는 일마다 잘 되지 않아 항상 용두사미가 되는 것을 경험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예전엔 부유한 삶을 살았는데 사회적 시류를 잘 못 읽어서, 또는 사기꾼을 만나서 하루아침에 재산을 다 잃은 분도 계실 것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란 아주 어려운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하고 항변하고 싶을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는 어느 정도의 울분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인간관계의 문제이든, 건강의 문제이든, 재정적인 것이든, 아니면 더 고상한 부분에 관한 것이든 저와 여러분에게는 자기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힘들어 하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문제가 무엇인가를 돌아보고 그것이 실제로 나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라는 것을 인정하시기를 바랍니다.

병들고 가난한 여인 이야기
여기 병든 여인이 있습니다. 그 병이 생긴지 12년이나 되었습니다. 그 여인에게 가족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도 그 여인을 위해 예수님 앞에 나아와 고쳐달라고 애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야이로라는 사람은 자기 딸이 병들어 누었을 때에 예수님께 찾아와서 자기 집에 오셔서 딸을 고쳐달라고 했고(막5:22-23), 수로보니게 여인도 자기 딸의 귀신들린 것을 고쳐달라고 했습니다(마15:22-28). 중풍병 들린 자는 그의 친구들이 직접 그를 둘러메고 예수님 앞에 나아왔습니다(막2:3).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돕는 자도 없는 아주 가련한 여인이었습니다.
10년이 넘는 세월을 병치레를 하다 보니 가진 가산도 다 허비하였습니다. 성경에는 그 여인이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자신의 자녀들과 가산을 다 잃은 욥과 같은 처지에 있던 여인이었습니다. 이렇게 병든 여인이 사람들에게서 환영을 받았을 리 만무합니다. 모든 고통과 부끄러움과 슬픔과 울분은 그 여인의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어울려 살아가면서 우리의 소외된 이웃들의 처지를 돌아보고 그들의 삶이 어떤 것일까를 생각해 보는 것은 참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것입니다. 출애굽기 22장 25-27절, “네가 만일 너와 함께 한 내 백성 중에서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 주며 너는 그에게 채권자 같이 하지 말며 이자를 받지 말 것이며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그것이 유일한 옷이라 그것이 그의 알몸을 가릴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로운 자임이니라.”
다른 이들의 처지를 살피는 것은 친절함과 관용의 마음이 있을 때에 가능합니다. 모두가 나의 경쟁자, 나에게 피해를 끼치는 자, 나의 것을 탐내는 자로 생각할 때에는 어떠한 친절도 베풀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받은 은혜, 새 생명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살게 된 그 은혜에 감사할 때, 우리 마음에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고 이웃들에게 선행을 베풀 수 있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하늘의 보화를 사모하라고 우리 예수님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믿은 것을 행동에 옮기다
열두 해를 악한 병, 혈루증으로 앓고 있는 이 여인이 들은 소식은 무엇입니까? 나사렛 예수의 소문이었습니다. 그는 실로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언자라고도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지 못할 만큼 추했던 그 여인이 용기를 냅니다. ‘저 여자는 왜 나와서 눈살 찌푸리게 해’ 하는 소리도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계신 곳으로 자꾸만 자꾸만 나아갑니다. 그러나 감히 그의 앞에 서지 못하고 뒤에서 따라갑니다. 그러다가 진짜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이 스치는 가 싶더니 자기의 병이 나은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이것이 바로 그 여인의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행하신 능력에 대하여 들은 바를 거짓으로 여기지 않고 자기의 마음 속 깊이 믿었습니다. 또한 자신도 아주 오랜 병에 시달리고 있지만 이 나사렛 예수에게 나아가서 그를 만날 때에 그 병이 낫게 될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믿은 대로 행하였습니다.
여인의 믿음은 두 번이나 확인 되었습니다. 그가 믿고 예수의 옷자락에 손을 대는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그 여인의 믿음을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또 한 번 예수님께서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고 물으실 때에 모든 것을 있는 대로 다 말씀드렸을 때에 그 믿음을 인정받았습니다.
유튜브YOU TUBE에 신학자 한 사람이 PD의 질문에 대답하는 중에 신념과 신앙의 차이점을 설명하는 동영상이 있습니다(The Seduction of Christianity Part 1 - Faith). 신념은 적극적인 사고방식의 일종으로 자기 암시를 주고 “나는 꼭 그렇게 된다”하는 식의 생각을 갖는 것인데 그것을 통하여서도 병이 낫기도 하는데, 그것은 플라시보 효과와 같은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플라시보효과는 약효가 전혀 없는 약을 주면서 그것이 그 특정 질병에 효과가 있는 약이라고 주고 먹게 하였을 때 약효가 없는 약이지만 그것을 먹은 환자들이 치료된 것을 경험하는 것을 말합니다. 약이 아닌 것을 먹고 병이 낫는 효과를 플라시보 효과라고 합니다. 그것처럼 신념은 사람의 삶을 어느 정도 변화시키고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신념이 아닌 것을 요즘의 기독교인들이 잊고 있다고 합니다. 신앙은 내가 스스로 적극적인,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을 통해 내 삶을 향상시키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신앙에는 대상이 있습니다. 그 대상은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될 수 없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삼위 일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산타클로스와 같은 우리의 선호하는 소원들을 들어주시는 하나님을 만들어 내는 일을 중단해야 합니다. 혹은 하나님 없이, 예수님 없이, 성령님 없이 자기 스스로 긍정적으로 자기 삶을 지켜감으로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는 세속적인 노력도 중단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예수님께 찾아 나온 이 여인과 같은 믿음과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소문을 들었을 때 그 여인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보내신 아들이 신 것을 믿었습니다. 그에게 나아갈 때 자신의 문제를 해결 받을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런 믿음으로 나아가 정말로 자신의 병이 낫는 것을 경험하자 그 여인은 거룩한 두려움으로 예수 앞에 엎드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여인에게 해 주신 말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 지어다”하신 것은 오히려 그 여인을 위한 말씀이었다기보다는 믿음 없이 의심하고 바로 그 순간에 일어난 일도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위해서였습니다. 오늘의 저와 여러분을 위한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우리의 영과 육이 구원받게 되는 것은 믿음을 가질 때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경험하라
여러분의 삶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까? 현대에 들어서 신학이 고도로 발전하고 고고학과 역사학이 발전하면서 가장 괴로운 이들은 바로 신학생들입니다. 신학을 공부하는 시기가 짧으면 7-8년, 길면 10년 이상이 되는데, 그 기간 동안에 그리고 예수를 경험하기 까지 신학생들은 세상에서 가장 고뇌가 큰 이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교회에 신학생이나 학교를 다니고 있는 전도사님들이 있다면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너무 자세히 신학적인 질문은 하지 마시기를 권면합니다. 그들의 그 모든 고민이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자라갈 것인데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순진한 신앙인이 아니라 모든 가능한 의심의 자료들을 다 검토한 후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연단된 신앙의 리더들인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순례의 길이 너무나 험난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광야시험에 비할 정도입니다. 목사가 되기로 주님 앞에 서원하고 그 길을 가는 이들을 축복하되 그들의 열정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것이 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예수님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인간되셨던 그 삶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들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예수님의 인격을 경험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저는 감히 현대의 기독교 풍토를 비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지닌 목회자들이 존경받지 못하고 경영자의 마인드로 가득한 목회자들이 앞서가는 리더로 추앙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교회의 중직들이 사회에서 사업을 하고 경제적으로 부를 누리다보니 그들에게 조언을 하는 목사님께서 그들보다 더 나은 경영 마인들을 가져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교회 강단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보다는 긍정적, 적극적 신념으로 자신의 삶의 질을 향상 시키는 방법을 가르치는 목회를 자기만 하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도 배우라고 세미나를 하는 경우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이승주목사도 때로는 방법들을 사용하여 목회의 실타래를 풀어가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주님 앞에서 묵상할 때에 목회는 방법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 이므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서 풀어 가시는 그 방법에 나는 그저 순종하고 따르는 일이 필요한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를 경험하고 예수의 능력을 신뢰하고 예수의 삶에 대한 묵상이 있을 때에 겨자씨교회를 통한 저의 사역이 빛을 발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예수님을 초대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사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마치 예수 없이는 일 분 일초도 버티지 못할 것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에 여러분의 삶을 위한 염려들은 떠나가고, 예수의 능력으로 그 모든 것을 이기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마태복음 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설교 후 기도
오 하나님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경험하게 하옵소서. 날마다 동행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생각을 품은 자 되게 하옵소서. 나의 상상으로 하나님을 만들어가게 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순종하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진정한믿음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겨자씨감리교회 이승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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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02)2693-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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