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
본문: 마태복음 5장 13-16절
목적: 성도들이 뜨거운 믿음과 강력한 실천의 주인공이 된다.
흐름: 세상 가운데 거하라/선을 행하라/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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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믿는 자들에게 놀라운 은혜를 주시며 날마다 주 안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올려드립니다. 오늘 말씀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는 제목의 말씀입니다. 오늘 마태복음 5장 13-16절의 본문을 가지고 요한 웨슬리 목사님이 설교한 내용을 적극적으로 인용하면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말씀을 들으시는 동안 어떻게 요한 웨슬리 목사님이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경건의 삶을 살 수 있었는가를 아시게 될 것입니다. 사실 믿음의 사람들이 할 일은 말씀보고 기도하고 신앙의 선배들의 삶을 본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충실한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오늘 말씀이 저와 여러분에게 큰 은혜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세상 가운데 거하라
본문 16절에서 우리 예수님은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명백하게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것은 세상과 결별하여 살아갈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빛 된 삶을 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를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시면서 그 맛을 잃지 않도록 당부하셨습니다.
기독교가 만일 사회를 떠난다면 기독교는 참된 종교로 남을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없이는 기독교가 기독교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 갇힌 신앙은 온전하지 못한 것입니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야 합니다.
흔히 믿지 않는 사람들이 성도들을 비판할 때에 하는 한 가지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자기들끼리만 어울려 산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도의 교제는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므로 우리는 항상 성도 간에 교제와 교통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들을 배제시키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어느 공동체이든지 다수가 소수를 배려하지 않을 때에 소수는 고통당하고 심하게 박탈감을 느끼게 됩니다. 만약에 성도들이 자기들이 속한 공동체의 다수를 차지할 때에 더더욱 믿지 않는 이들의 상황과 형편을 살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균형을 잘 이루어야 합니다. 성도의 일상은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항상 세상과 떨어져 하나님과 조용히 만나는 교제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또 일정 기간을 계획하여 하나님과의 교제에 힘쓸 수 있는 수련의기회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두고 생각할 때에 온종일 한 평생을 수양만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 후에는 반드시 세상을 만나러 나가야 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기독교인으로서 온유함을 가지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신앙입니다. 온유함은 하나님께 절대복종하려는 마음이며, 자기에게 닥쳐오는 고난과 고통을 참고 견대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온유함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온유함은 다른 사람을 대할 때에 유하고 부드러운 태도를 취하며 다른 사람을 용납하는 것이기에 관계할 상대방이 없이는 검증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은 자기만의 신앙에서 벗어나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덕을 끼치기 위하여 세상의 한 가운데에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도 세상을 저버리는 신앙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거룩한 삶을 사는 신앙을 가지라고 권면하였습니다(고전5:9-11).
우리 예수님은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고, 오른 편 뺨을 치면 왼편 뺨을 돌려대고, 원수를 사랑하고 우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보하고 미워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세상과 관계하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세상에 빛이 되며 소금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또 다른 방법은 말로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참된 종교인 것을 믿으십니까? 여러분의 신앙을 통하여 영생을 얻은 것을 확신하십니까? 그렇다면 이러한 생명의 종교는 세상에 드러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근본 목적은 우리를 통하여 세상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마5:48). 산위의 마을이 숨기지 못하는 것처럼(마5:14) 예수 안에서 구원하심을 입은 성도들은 세상에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여러분의 거룩한 삶 때문에 세상이 여러분을 미워할 것이며, 그들 속에 선한 것이 없기 때문에, 또 한 편으로 세상에게 그들의 죄를 생각나게 할 것입니다. 이렇게 기독교 신앙의 드러남은 자연스러운 기독교의 본질적 속성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거룩한 예배(liturgy)를 통하여 가능합니다. 그러나 더 넓게는 예배당 안에 예배가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행하라고 명령하신 일들을 실천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즉 이것은 우리의 영과 육을 아울러 그를 영화롭게 함이며, 정성으로 그의 기뻐하시는 일들을 하는 것이며 우리의 직업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되며, 먹고 마시는 일이나 팔고 사는 일이 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되게 하는 일입니다.(고전 10:31) 이것이 하나님을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며, 빈들에서 홀로 기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을 간단명료하게 표현하면,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항상 친밀함 가운데 거하면서 동시에 세상 가운데 살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세상 속에서 선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라
“13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라 14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3-16)
왜 선을 행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에 따르면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 기대되는 것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삶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 것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 믿으면 병이 낫고 예수 믿으면 귀신이 떠나갑니다. 예수 믿으면 배고픔이 해결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사역을 통하여 확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더 중요하게 주시고자 했던 메시지, 복음은 예수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가치를 뒤엎는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 안에서 살아가도록 인도하는 것이 예수님의 복음선포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야고보서에는 왜 선을 행해야 하는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도 선을 행하지 않고 우리의 정욕을 따라 자신을 만족시키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그 날이 얼마나 될 런지 알 수 없습니다. 인생의 무상함을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라고 말씀합니다. 야고보기자가 주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우리가 불쌍하게 되거나 죽음에 이르는 날이 오기 전에 선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전도서기자가 말씀하는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12:1a)는 말씀과 한 가지입니다.
세상에서 선을 행하려고 애쓰고 힘쓰는 일에 반대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반대하는 이유는 이미 선을 행하였지만 사람들의 의식이 변하지 않고 사람들이 고마워하지도 않고 심지어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도 실패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결과를 예측하거나, 이미 경험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우리가 선을 행할 때에 꼭 기억해야 할 4가지를 이야기 합니다. 첫째, 우리 주님은 육체적으로 연약하고 열악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을 직접 도우라고 하십니다. 이 일을 하지 못할 때에 우리는 주님의 책망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키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은 보통 사람들을 통하여 일하십니다.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고 헌신해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중보기도를 기뻐하시고 그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관계하는 사람들이 어떠한 심성의 사람인지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 모릅니다. 판단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사람을 판단하여 선을 행할 기회를 소멸하지 말아야 합니다.
전도서 기자는 말씀합니다.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11:6) 이러한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선을 행한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사람을 통하여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세상의 빛 되고 소금되신 우리 주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세상에서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선을 행하고자 하는 의지는 쉽게 생기지 않습니다. 오직 세상적인 것을 사랑하는, 세상적인 가치를 사랑하는 마음을 포기하고 내려놓을 때에 가능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5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이 세상도, 그 정욕도 다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5-17).
믿음의 사람들이 선을 행하려 할 때에 극심한 고난이 옵니다. 아무런 보상이 주어지지 않을 때에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심지어 신앙을 버리는 일까지 벌어집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의 선을 행하는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니 여러분, 선을 행하시기 바랍니다(고전15:57-58). 선을 행하되 지치지 말고, 실망하지 말고 계속해서 행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선을 행할 때에 그것이 나의 의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될 때에 세상이 여러분을 통하여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자신이 영광의 자리에 앉게 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선을 행할 때에 힘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실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기도가 선행의 기본이 된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독교인의 선행은 인간적 노력의 승리가 아니라 기도로 하나님 앞에 겸손히 매달리며 최선을 다할 때에 하나님이 그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삼년 육 개월 동안 내리지 않던 비를 오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동역자였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자신도 하나님의 동역자인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동역자의 할 일은 선한 마음을 품고 그일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며 더 나아가 그 일의 성취를 위하여 겸손히 기도해야 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선을 행하고 세상을 이기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엡6:10-11).
선을 행할 때에 목표로 삼을 것은 여러분의 마음속에 거짓 없는 사랑을 품는 일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진실함으로 성실함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보고 판단할 때에 ‘저 사람은 정말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는 사람이다’고 생각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명령마다 순종하였습니다. 그 아들 이삭을 바치라 하였을 때에도 그는 그 행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을 통하여 세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그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들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천국복음을 선포하다가 유대관원의 손에 이끌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혼자 애쓰고 힘쓰다가 지쳐 실망하고 맙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이라면 꼭 가야 할 길이 이 길입니다. 믿음의 길은 영광만 있는 길도, 고통만 있는 길도 아닙니다. 영광과 고통이 교차하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존재와 삶을 통하여 세상은 자기들의 죄를 깨닫게 되고 자기들의 죄가 드러나게 되기 때문에 예수님을 미워하였던 것처럼 우리를 미워할 것입니다. 그 때에 저와 여러분은 ‘아, 내가 옳은 길로 가고 있구나, 우리 주님이 가라고 하신 좁은 길로 가고 있구나’하시면 됩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신앙의 선배들을 본 받아 신앙적 경건과 사회를 향한 자선 활동으로 세상의 빛이 되라고 당부하였습니다. 이 일은 우리가 세상의 가치를 벗어버릴 때에 가능합니다. 우리 눈이 보는 귀하고 좋은 것을 부정해야 합니다. 몸의 영양을 충족시키는 것 이상의 탐식을 금해야 합니다. 집을 많이 소유하고 좋은 집을 선호하는 것으로 우리에게 있는 재화를 다 낭비해서는 안됩니다. “의, 식, 주, 가구 등에 있어서 불필요한 사치성을 물리치고 하나님이 주신 모든 선물을 가치있게 활용하는 선한 재산 관리인이 되십시오.(벧전4:10). 그리고 시간과 노력의 낭비를 막고 무슨 일에나 최선을 다하십시오. 한 말로 하면 믿음과 사랑으로 충만하여 선을 행하고 고난을 참으며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주의 일에 전력하십시오.” 여러분,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주 안에서 선을 행하는 삶을 살아가기 바랍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
여러분, 믿는 자들은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고 하시는 것은 세상의 연약한 자, 소외된 자들을 돌보라는 말씀입니다. 도와줘도 고맙다고 답례할 수 없는 형편의 사람들을 도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주위에 여러분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우리가 어려운 이웃을 돕고자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두려운 마음과 의심이 있습니다. ‘내가 저들을 도우면 저들이 나에게 완전히 의지하게 되고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빼앗아 갈 것이다.’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나보다 못한 형편이지 누가 알아. 장롱 속에 통장에 감추어둔 돈이 나보다 더 많을지 몰라’ 하는 의심이 들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너무나 비참한 생활을 하는 이들과 관계하는 것일 싫어서 그들을 멀리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들을 돕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학살의 대상이 되는 소수 민족들과 부모가 에이즈로 죽고 자기들도 에이즈에 걸린 어린이들이 아프리카에는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어린이들을 돕는 착한 한국인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들 중에 다수가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환경의 문제도 심각합니다. 환경이 오염된 피해는 고스란히 온 국민에게 특히 사회의 저소득층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매일 기도할 대에 신월동이 아름다운 고장이 되게 해주실 것을 간구하는데 이유는 지금 이러한 환경에서 자라는 어린이들이 어떠한 병에 걸리게 될지 알 수 없고 그 어린이들의 정서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환경을 위하여서도 관심을 가지고 환경지킴이가 되시기 바랍니다.
얼마 전 서부연회에서 보내온 공문을 받았습니다. 북한동포들에게 보내는 내복의 값과 함께 계좌번호가 안내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기도하면서 북한동포들을 돕게 해달라고 하였는데 이렇게 쉽게 도울 길이 열린 것입니다.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올겨울에는 우리 겨자씨교회도 북한동포들을 위하여 내복을 보낼 계획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어린이를 위한 크리스마티 파티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다른 교회에 다니는 어린이는 물론 교회에 다니지 않는 어린이들 모두를 환영하고,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작은 일들이 사회에 힘을 주는 일인 것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아직 공개하기 어렵지만, 전도하면서 선을 행할 지혜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있습니다. 저는 그 일을 하기를 원하고 준비되었습니다. 정기적으로 꾸준히 이 일을 행할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로 작정한 자, 복음이 필요한 자를 만나게 하실 것을 확신합니다. 여러분도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여 어떠한 선을 행할 것인지 깨달으시고 열심히 행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설교후기도
모든 순종하는 자에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 우리 믿는 자들이 세상의 소금과 빛 되 게 하옵소서. 어둡고 암울한 이 시기에 이웃과 사회에 새 힘을 주는 교회와 성도들이 다 되게 하옵소서. 때로 어렵고 힘들어서 낙심할 때에 성령께서 우리를 깨닫게 하셔서 다시 일어서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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