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아가라
본문: 디도서 2:11-14
목적: 성도들이 자기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으로 승리의 삶을 살아간다.
흐름: 이승주목사의존재하기/친구의방문/친구의죽음/이용규선교사의내려놓는삶/하나님의은혜안에살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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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주목사의존재하기
삶이 힘들어지고, 그 자신이 삶 속에 쏟아놓는 언어들이 부정적이며 불평의 말이라면 그것은 여러분이 불신앙의 불씨를 당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질 때에 여러분은 무엇을 하십니까? 예를 들면 버스를 타고 가는 상황이나 누구를 기다리는 상황에서 장시간 방치될 때 여러분이 습관적으로, 아니면 더 의도적으로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질 때에 여러분은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과 대화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하고 그 암송한 말씀을 떠올리며 여러분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까 더욱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질 때마다 하나님과 교제의 시간을 갖는 습관을 여러분이 다 가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그러나 지금 저는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항상 나에게 아주 편안한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지면 제가 하는 두 가지 행동이 있는데 머릿속으로 곰곰이 생각, 즉 고민하는 것입니다. 나의 삶의 모든 상황을 도마에 올려두고 고민합니다. 이것은 아주 재미있어서 버스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으로 간다고 해도 결코 지루할지 않을 정도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습관이 여러분에게도 있다면 빨리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사서 걱정을 한다고 하는 말이 있는데 고민거리도 아닌 것을 고민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여러분이 머리를 짜내어 고민한다하여도 상황이 바뀌지 않으며 안 될 일이 되도록 변하지 않는 것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또 한 가지 습관은 시간표를 짜고 미래의 계획을 세우는 것입니다. 앞날을 염려하며 어떻게 하면 보다 보람 있는 삶을 살까를 염려하는 가장 인간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염려와 탐욕을 물리치고 삶에 대한 바른 자세를 갖도록 하기 위해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2장 16절부터 21절까지에서 하셨습니다. “16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두리라 19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이 말씀을 더 잘 이해하려면 영어성경 NLT번역을 참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21 Yes, a person is a fool to store up earthly wealth but not have a rich relationship with God." 사람은 부를 쌓을 줄은 알아도 하나님과의 충족한 관계를 맺지 않는 바보이다. 자기의 육신을 위한 물질을 소유하고 자기의 지위를 높이고 지식을 쌓지만 하나님과 사귐이 없다면 저와 여러분은 바보일 뿐입니다.
이 말씀이 이승주목사가 계획을 세우는 습관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이러한 습관 속에서 저는 어리석은 부자와 같이 저는 매일 매 순간 창고 지을 걱정을 하며, 또 그 많은 수확을 누릴 생각을 하며 지내온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우리는 얼마나 내 생각만을 앞세우는지 모릅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만, 내 계획만을 나열합니다. 이렇게 계획을 하고 또 계획을 하는 습관은 또한 염려하고 고민하는 습관과 같이 불신앙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계획을 다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어떠한 계획을 할 때에 항상 하나님께 먼저 물으시기 바랍니다. 습관적인 고민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피할 길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방법으로 우리의 삶의 어려움을 헤쳐 나가려 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친구의 방문
목요일 아침에 생각지 않았던 전화를 받았습니다. 서울신학대학에서 함께 공부했던 사랑하는 친구가 다니러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친구는 학교 시절에 아주 발랄하고 자기가 원하는 일을 아주 적극적으로 하고 다니는 학생이었습니다. 같은 기독교교육과 친구였지만 기숙사에 들어오면서 더 친해졌고, 사적인 영역에서 만나다 보니 남다른 친구가 되어 학교 졸업한 후에 근 20년이 되는 데도 우리는 여전히 친구입니다. 아마도 평생을 갈 친구이겠지요.
목요일 아침까지도 저는 우울한 상태에 머물렀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인도하신 것을 믿었지만 나의 삶의 현재에 대한 불만이 있었습니다. 미혼의 상태와 미자립교회의 담임자의 직임을 맡고 있는 이 상황이 저에게는 무척이나 불안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생기기도 하고 미리 걱정스러운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일상에도 불만이 생겼고 그래서 우울했습니다. 이런 상태에 있게 되면 기도도 안 되고 하나님과의 관계의 단절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두 주 정도 이렇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놀라운 분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위로하셨듯이 이승주목사를 가끔 위로해 주십니다. 한번은 주일 오후 영어예배를 마치고 언제나와 같이 혼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전에 봉사하던 인천 제일 감리 교회의 초등부 어린이 수정이였습니다. 그날이 전도를 위한 “예수사랑축제”일이었는데, 자기는 전도를 못해서 속상했다고 합니다. 그냥 이승주목사가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답니다. 나를 기억해주는 어린아이의 전화 한 통화로 하나님께서는 제가 혼자 예배드리고 혼자 눈물의 식사를 하고 있는 중에 저를 위로하신 것입니다.
또 한 번은 수원에 계신 고모님을 통하여 위로하셨습니다. 아무리 전화를 하려고 해도-번호를 잘못적어서-전화가 안 되자 다른 고모님께 전화하셔서 저에게 전화하라고 하셨습니다. 함께 통화하면서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러고도 대전에 계신 고모부님과 장수교회의 여러 성도님들의 기도는 저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능히 경험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난 목요일에는 사랑하는 친구를 통해서 하나님은 저를 위로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예정된 일도 아니었는데 친구는 어려운 시간을 내서 기가 죽은 주의 중에게 찾아온 것입니다. 함께 대화를 하면서 그 친구의 열심히 사는 이야기에 오히려 제가 불평하던 것들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제가 하도 ‘힘들다, 힘들다’ 하니까 하나님께서는 저보다 더 힘들게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랑스런 사람들을 보여 주셨습니다. 추위가 몰려온 때부터 저는 이곳에서의 삶에 불평을 하기 시작했는데 하나님께서는 더 추운 환경, 더 어려운 환경에서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친구의 가족을 보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삶이 어렵고 힘들 때에 더 어려운 상황에 있지만 잘 이겨내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십시오. 그중에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셨지만 사람이 되셔서 당하지 못할 숱한 고난을 당하시며 이겨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으로 이루신 일이 무엇입니까?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 불리우는 영광을 우리에게 선물하셨습니다.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어느 교회의 소식지에 실린 만화를 보니 한 성도에게 돌이 날라와 맞으니 참 아팠습니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보니 엄청나게 많은 돌들이 그 사람을 향해 날라 오는데 우리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돌들을 막아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이 작은 돌이 하나 튀었나보구나 아프지 하시는 내용이었습니다. 고난 중에서 예수님을 기억하시고 삶의 고통을 불평하기 전에 우리 주님이 여러분에게 이루신 일이 무엇인가를 묵상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친구의 죽음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금요일에는 상가에 다녀왔습니다. 서울신학대학에서 함께 공부한 남학생 친구였는데 금요일 새벽 불의의 사고를 당하였습니다. 성결교회의 부목사였던 이 친구는 새벽 예배 후 성도들을 위해 차량운행을 마치고 길을 건너는 중이었답니다. 술에 만취한 운전자가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도 모른 채 친구를 치고 달아났습니다. 응급실에 옮겨졌지만 혼수상태로 얼마간을 있다가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너무나 마음씨가 착하고 천사와 같던 친구였는데....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허락하신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헛된 영광을 구하며 부질없는 물질을 모으며 자기 자신을 우상화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날에 우리는 모두 그 부르심에 순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뿐만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시는데 그들 자신이 한 일을 가지고 심판하신다고 합니다.
“13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14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15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17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 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벧전 1장.
"13So think clearly and exercise self-control. Look forward to the special blessing that will come to you at the return of Jesus Christ....17...He will judge or reward you according to what you do." 1Peter 1.
여러분,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갈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의 보화를 땅에 쌓지 말고 하늘에 쌓으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 땅에 미련을 두지 말고 하늘을 소망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사랑하는 가족까지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는 미워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은 뜻은 하나님의 뜻 보다 우선하는 그 어떤 것도 우상이 되며 그것을 거절할 때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용규선교사의 내려놓는삶
“자신에게 익숙한 것, 자신이 기대하는 것으로 사역하다보면 사람의 일만 보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경험과 기대를 버리고 하나님을 구하면 하나님의 일하심을 본다.”
이 책, 더 내려놓는 삶, 을 구입한 것은 올해 1월31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책꽃이에 꽃아 둔 채로 11월이 되도록 읽지 않았습니다. 아니 처음부터 읽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그의 서론을 읽으면서 복음주의 선교사의 뻔한, Cheezy, 신앙고백이라고 생각하여 책을 덮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신앙서적을 쓴 저자들의 신앙을 신뢰하지 않는 편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저자들이 자기신앙고백이라고 쓴 글들이 삶이 담겨지지 않은 이야기들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은 글과 틀에 박힌 복음주의 신앙고백을 되풀이하는 것으로 저를 실망시켜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더 내려놓는 삶’은 영어로도 번역이 되어 세계의 많은 신앙인들에게도 읽혀야 할 정도로 솔직하면서 진지한 신앙고백이 담긴 책이라고 결론 내리게 되었습니다. 저자, 이용규선교사의 자기 성찰과 하나님과의 교제는 이승주목사의 사역에서, 그리고 많은 성도들의 삶에서 무엇이 결핍되었는가를 아주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먼저, 저를 비롯한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기대감이 없이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조차 우리의 생각과 기준 속에서 기도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내어드리고 열어 보이는 삶이 없는 것입니다. 이용규선교사의 우리의 이러한 모습에 대한 자기 성찰적 지적입니다.
“몽골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 한국의 크리스천들의 삶 가운데 동일하게 일하시지 않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우리는 예측 가능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며 예측 가능한 일들만 추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우리가 기회를 드리기 보다는 우리의 계획과 경험과 고집으로 우리의 삶을 채워간다. 하나님이 들어오실 자리를 만들어드리지 않은 채....결국 자신이 신뢰하는 것에 자신이 묶인 채 살아가는 것이다.”
둘째로 저를 비롯한 많은 신앙인들이 아직도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주인 되어주시기를 구하지만 실제로 저와 여러분의 마음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당신의 삶이 그렇게 힘든가? 왜 그렇게 자기 자신과 화해할 수 없는가?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인이라고 말하면서 어느 새 다른 것을 우리의 삶 가운데 올려놓고 살아가기 때문이다....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어느새 하나님의 거룩과 성결을 추구하기 보다는 세상 성공에 목을 맨다.”
이 문제는 다른 누구보다도 목회자들에게, 주의 부르심을 입은 사역자들에게 주는 교훈이 큽니다. 버렸다고 하고, 내려놓았다고 하다가도 목회라고 하는 사역이라고 하는 영역에서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고, 주목을 받고, 더 크게는 인기를 얻고,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도 성공한 목회와 사역을 하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못하는 실수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과 하나가 되게 하시기 위해 사명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소명을 주시고 사명을 위탁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성숙시키며, 우리와 더 깊이 연합시키기 위해서이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해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맡은 일의 중요성 여부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으신다....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 부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일과 무관하게 우리는 그저 하나님 앞에 용납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노력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아버지의 임재하심 안에서 엄청난 사랑과 기쁨과 평안을 경험하게 된다....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을 믿는 대가가 아닌 하나님 자신이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사역을 감당하시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과 하나이신 하나님이신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또한 자기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영광되게 하시고 사명을 주셨습니다(요17장). 때로 믿는 우리들의 착각은 자기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내가 없으면 하나님은 이런 저런 일을 못하실거야’하며 거만을 떠는 것이 우리의 모습니다. 그러나 이용규선교사의 고백을 통해서 우리가 깨닫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과의 사귐을 위해서 사명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저에게 맡겨진 사명, 여러분에게 맡겨진 사명이 실은 그것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통로라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18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19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22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26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요17장.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살아가라
오늘 본문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였고 그 은혜로 구원받았고 그 은혜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양육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저와 여러분은 염려와 근심이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이용규선교사가 그의 삶에서 보여주었듯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깨달음만 있으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저 천국을 예비하셨고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을 돌보십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행복한”이라는 단어는 세상적인 기준에 의해 정의되어서는 안됩니다. 지위가 높고, 인기가 있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돈이 많고, 특별한 기술이나 지식이 있다는 것이 행복의 척도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이 저와 여러분의 행복의 척도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서 다윗과 엘리야와 엘리사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사귐이 있는 그 삶이 행복의 삶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어디를 바라보고 어떠한 삶의 목표를 가져야 합니까? 본문에서는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모든 모습들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사랑하는 모든 죄악 된 일들을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도하시고, 또 다시 시도하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도우시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결의 삶이 어렵다고 하지만 구원을 기쁨이 있으며 항상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끼며 사는 사람에게는 가능한 일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세 가지 삶의 내용을 제시합니다. 첫째, self-control 자기 절제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합니다.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어’ ‘나는 이 일을 멈출 수가 없어’ 그러나 그것은 거짓입니다. 자아의 깊숙한 곳에서 그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죄를 지어도 괜찮다고 하는 마음이 그 속에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 절제를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자기 절제는 이런 식입니다. 항상 과식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분명히 자기가 수저를 집어들 경우 테이블에 있는 모든 음식을 다 먹어 치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자기 절제를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그 상에 차려진 음식을 어느 정도 다른 곳으로 옮겨둘 것입니다. 그러면 그가 식사를 시작해도 그 상에 있는 모든 음식을 다 먹고 과식으로 고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예를 들며, 믿음의 사람으로 금주를 실천하고 싶은 주부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술을 마시는 모임에 나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도 이전에는 술을 즐기던 사람이었으므로 그 장소에 있게 되면 분명히 유혹을 이기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완벽하게 자기 절제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절제를 위한 노력을 하고 그 노력의 성과를 맛볼 수는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절제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까? 그것을 이기도록 기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자기 절제의 삶을 실천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right conduct 의로운 행동을 하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에 그 스스로 의로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의로움이 무엇인가를 우리는 배울 수 있습니다. E.S. 피오렌자는 Burk Lecture에서 무엇이 옳은 가를 결정하는 것은 그 시대의 정신에 비추어 판단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이러한 말을 한 이유는 성경에서 말씀하는 그 말씀들이 적용되는 상황마다 저마다의 독특한 처지가 있기 때문에 문자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충분히 묵상해야 합니다. 성령의 조명하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깨달아진 말씀을 붙들고 자신의 상황에서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의로움은 정의감에서 불의를 판단하는 의로움이 아닙니다. 그래서 자기는 뒤로 하고 다른 이들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의로움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이웃과의 삶의 한 가운데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의로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보잘 것 없는 한 사람에게 베푼 사랑을 의롭게 여기신다고 하였습니다. 정의와 긍휼과 사랑의 실천이 저와 여러분의 삶에 풍성하기를 기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성도의 삶에는 devotion to God, 하나님을 향한 열심히 있어야 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무슨 일이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이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하나님과의 대화가 끊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 되는 복은 이러한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있는 사람에게 임하는 복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우리는 이 땅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이 땅에 있지 않습니다.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하고 이미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9...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벧전2장
설교후기도
우리와 사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을 저버리고 우리의 의지대로 행하였던 모든 일들을 회개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삶의 주인 되어 주옵소서. 순종하고 낮아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기독교대한감리회 겨자씨교회 담임목사 이승주
158-831 서울시 양천구 신월1동 238-9 2층
전화 02)2693-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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